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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라메쉬 발세카 Ramesh Balsekar

awarener 2011. 9. 24. 10:00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런던 대학을 졸업한 후 인도 국영 은행에 들어가 은행장까지 지내다가 친구의 소개로 스승 마하라지를 만났다.

이후 마하라지가 입적할 때까지 스승의 곁에서 영어 통역을 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1982년부터 자신의 집에서 사트상을 시작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차례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의식은 말한다Consciousness Speaks : conversations with Ramesh S. Balsekar》《궁극의 이해The Ultimate Understanding》등의 책을 썼다.

 

 

 

 

마하라지와의 첫만남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를 만나러 가기 전 나에게는 20년간 모신 스승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이원론을 이야기했지만 그가 말하는 수준은 단지 자신의 스승을 이해하는 수준에 멈추어 있었어요.

그는 진실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돕는데 모든 것을 다했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의 타고난 성격 탓으로 20년을 꾸준히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죠.

내가 마하라지를 찾아 갔을 때 처음 만남 처음 나눈 대화에서 나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았어요.

그 20년의 세월이 헛되이 낭비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과정의 일부였어요.

그 세월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죠.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것을 즉시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Jean Dunn이 마하라지의 가르침에 대해 몇권의 책을 썼고 그 글들을 모은 것이 아이 엠 댓으로 출판되었죠.

그 당시에는 2권짜리 책이였어요. 나는 그 책을 구했고 주말 내내 읽고는 월요일 아침에 마하라지를 만나러 갔어요.

내가 처음 그의 집 다락방으로 올라갔을 때 그를 시중드는 제자 한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어요.

마하라지는 내가 계단을 올라가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앉아 있었죠.

 

 

“오오!! 자네가 드디어 왔는가? 이리와서 앉게나.”

나는 속으로 마하라지가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묘한 것은 마하라지가 자신이 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한게 아니라는 강한 느낌이었어요.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영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던 것이죠.

 

 

저는 봄베이에서 평생을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이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왔지만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내가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번도 마하라지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어요.

“적어도 마하라지와 당신 사이에는 2-3마일 정도의 거리가 있었던 셈이군요.”

 

 

그는 자신이 마하라지와 5분 거리 떨어진 곳에 20년 넘게 살고 있었고 자신 또한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마하라지에 관해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분야에 책들을 꽤나 많이 읽었고 한번은 서점에 가자 점원이 아이 엠 댓을 권하면서 읽어보라 하였고 그 책을 읽은 후 자기도 여기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마하라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죠.

 

 

-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와의 만남이 있은지 1년 후 라메쉬에게 깨달음이 찾아오게 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2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겉으로 보이는 진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라 일종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2가지 확신이 있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변용의 과정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났고 나는 정확히 그것이 어떤 순간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빛의 축제인 Deepavali 기간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나는 마하라지를 1978년부터 만나러 가기 시작했고 1979년에 이것이 일어났으니 1년 뒤에 일인셈이죠.

그 당시 마하라지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는 것은 제가 담당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곤 했어요.

바로 그 날 통역하기로 되어있던 사람이 나에게 대신 통역을 부탁했고 저는 그러겠노라고 했어요.

 

 

제가 통역을 시작했을 때 뭔가 매우 기묘한 느낌이었어요.

일반적으로 통역을 할 때 대개는 마하라지가 하는 말을 제가 듣고 그가 한말을 제가 흡수를 하고 그리고 난 후 통역을 하고 말로 그것이 표현되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나 그 기묘한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하라지가 하는 말이 마치 영어로 울려퍼지는듯 했어요.

저는 마하라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가 힘이 들었어요.

 

 

마치 내가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았죠. "왜 말을 그만 멈추지 않으세요? 당신이 뭘 말하려는지 알고 있다구요."

그것은 너무나도 저절로로 일어나고 있어서 저는 마하라지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어요.

그가 말하기를 멈추고 내가 말하기를 시작하는데에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그게 그것이 일어난 것이었어요.

마하라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가끔 그가 통역에 의구심이 들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방금 뭐라고 그랬나?"

그러면 전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마하라지. 저는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알고 싶으시다면 테입에 녹음된 것을 다시 들어보시면 될겁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단 한번도 저에게 제가 뭐라고 통역을 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날 모임이 끝난후 친구 한명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오늘 정말 대단했어."

그래서 제가 말했죠. "어떤 것이 그랬단 말인가?"

그가 말하기를 "자네의 말에는 대단한 권위가 실려 있어서 자넨 자네가 하는 말이 옳든 틀리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어.

자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컸고 권위적이었고 또 평상시보다 제스쳐도 많이 취하더군."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후에 라메쉬는 자신의 깨달음의 순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어요. 그 조바심이란 것은 제가 모든걸 알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마하라지와 저는 둘이 아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하나됨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마하라지와 저 둘 사이뿐 아니라 전 존재와의 하나됨이었죠.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란건 정말이지 불필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조바심이 있었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했죠.

 

 

저의 느낌은 이랬어요. "이 모든게 얼마나 쓸데없는 짓거리람. All this is unnecessary."

전 통역이 하고 싶지 않아져서 다른 누군가가 저 대신 통역을 해주었으면 했어요.

도저히 통역을 할 수가 없는 하나임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하나임의 느낌이었죠.

다시 말씀 드리지만 나 자신과 마하라지의 하나됨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와의 하나임이었어요.

 

 

 

- 마하라지가 어떻게 라메쉬의 깨달음을 인가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라메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그날 이후 마하라지가 내가 어떻게 통역을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더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의 통역이 즉각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한번 그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은데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난 적어도 한사람에게라도 이 일이 일어났다는게 너무나 행복하네.."

저는 너무나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어요.

그는 또 말했습니다.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 2명이나 3명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아마도.."

이게 마하라지가 저에게 인가를 해준 것이었어요.

 

 

 

궁극의 이해가 특정한 깊이에 이르게 되면 그리고 그 몸-마음 유기체에게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리하면 어떤 힘 - 의식이라 하든 신이라 하든 - 이 그 특정한 몸-마음 유기체에게 사람들을 보내줍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미스테리입니다.

 

 

 

예전부터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제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란걸 압니다.

만약 8-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 그룹이라면 저는 말을 듣기만 하는쪽입니다.

저는 한번도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기꺼이 말을 합니다.

 

 

제가 마하라지의 모임에 나갔을 때는 초기에 그가 통역자들에게 지시한 것은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오해되어지거나 잘못 통역되어지는 것을 걱정했던지 이 사항을 분명히 했습니다.

후에 마하라지는 저에 관한한 이해가 꽤 깊어졌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어느날 아침에 그는 몸이 꽤나 아팠고(앉을 수도 없을 정도여서 거의 누워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2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온 8-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첫번째로 말한 것은 "제발 질문을 위한 질문은 하지 마세요. 저는 가능한한 최소한의 질문만을 받고 싶군요. 제가 몸이 너무 좋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질문할 것을 상의해서 몇가지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마하라지가 자신의 침상에서 아래층으로 내려 가려고 했는데 (아마도 화장실을 가려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자리에서 뜨기 전에 제가 알기로는 처음으로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 하는 것을 멈추지들 마세요. 계속해서 질문을 하세요."

그리고는 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대답을 해줄겁니다."

하지만 아무런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죠.

 

 

누군가 제 옆에 있던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마하라지께서 당신이 말씀을 하시라 하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면 마하라지께서 돌아오시면 화를 내실겁니다."

마하라지가 다시 돌아와서는 말하기를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제가 말하기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없어서 저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하라지는 투덜거렸고 다시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아마 그가 죽기 한달전 일이었을겁니다.

 

 

마하라지는 그가 인가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죽기 2일전에 그는 몸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몸이 아파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입에다 귀를 대고 말을 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네도 갑자기 그는 놀라운 에너지를 모아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는 저를 똑바로 쳐다 보면서 제가 다가가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말을 하지 않는게야!!!"

그리고는 다시 쓰러져 버렸죠.

저는 그게 그의 마지막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24시간을 더 머물러 있었습니다.

 

 

초기에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제가 말을 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고

또 그 자신이 저에게 말을 해도 좋다는 인가를 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전면적인 인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하진 않았어요.

만약 마하라지가 그런 인가를 저에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말을 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말을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어쨌든 그 후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저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말을 한 것은 근처에 있는 아쉬람에서 온 호주의 의대생이 저를 찾아와서는 대화를 하길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한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휴학하고 인도에 온지 6개월이 되었고 그 다음주에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다시 찾아와도 되겠냐고 저에게 물었고 저는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날 그가 전화를 해서는 2-3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도 좋겠는냐고 물었고 저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학생이 데려온 사람들 중 하나는 그 아쉬람의 스와미였습니다.

그는 주의깊게 듣고 있었지만 저는 그가 안절부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대화의 말미에 그는 여기에 오게 되어서 매우 행복하며 다시 오고 싶다고 말을 했고 두세번 정도 더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의 아쉬람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으러 와야 한다는 것이 그를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아쉬람에 알릴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학생들을 아쉬람에서 내쫓아 버렸죠.

제 생각에는 그 학생들이 아쉬람을 떠나면서도 아주 행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변용의 시기였으니까요.

 

 

초창기에 저를 찾아온 사람들 중 하나는 미국인인 헨리 데니슨이 있었는데 그는 저에게 편지를 써서는

자신이 전세계를 여행하고 있으며 봄베이를 지나가는 동안 3-4일 정도 저를 보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쾌히 그러시라고 하였고 그가 와서는 3달을 머물다 갔습니다.

그는 항상 제가 LA에 가면 모임을 주선하겠노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친구들 중에 이러한 주제에 매우 관심이 있지만 인도에 올 시간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즈냐니(각자)로 알려지는데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이 흘러가는데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었고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헨리가 마지막 주에 떠나기 전에 저에게 봄베이 런던 뉴욕 LA를 거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주었습니다.

일이 이 정도에 이르자 삶이 저에게 LA로 가기를 원하는 것이 명백하였고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저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1987년 헐리우드로 갔을 때 헨리의 집은 호숫가에 자리한 너무나도 크고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큰 집에 사는 사람이 하인을 두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인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아침이면 헨리는 저를 깨우러 와서는 직접 아침을 차려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몇가지 잡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요가 저널이라는 잡지였는데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뒤적이던 중 제 눈에 들어온 것은 광고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일주일만에 깨달음 얻기 350달러" 라는 광고였습니다.

- 그들이 깨달음이라는 용어를 썼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류의 암시였던 것 같아요. -

저는 책을 덮고는 멍하니 앉아 혼잣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이런 데서 뭘하고 있는거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3일 정도 뒤에 찾아왔습니다.

 

 

아침 8시쯤에 노크를 하고서는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모임은 9시에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보아 밤새 한숨도 못잤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들어와서는 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인도인들이 하듯이 제 발 아래에 오체투지해서는 제 발에 손을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이렇게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는 일어나서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탐구를 해온 구도자였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들을 다 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헨리 데니슨으로부터 제가 온다는 전단지를 하나 받았다고 했습니다.

제 사진을 봤을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이것이 나의 탐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저를 만나러 오기를 원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헨리에게 전화를 해서는 "나는 지금 당장 라메쉬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라고 말했고

헨리는 "그는 3일이면 여기에 모임을 하러 올텐데 왜 그를 지금 성가시게 하려고 하나.." 라고 했기에 그는 기다렸노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명백히 약간 아주 약간 밀어주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약간 밀어주었을 때 그는 마침내 마지막 궁극의 이해를 성취했습니다.

저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이런 데서 뭘하고 있는거야.." 라는 질문에 해답을 알았습니다.

저는 바로 이 사람 때문에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있겠죠.

 

 

프로그램에 따르면 저는 앉아 있는 것보다는 걸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역주 : 라메쉬 발세카는 사람을 몸-마음 유기체라고 부르고 흔히 습관이나 카르마 따위를 프로그램이라 종종 부릅니다.

분리된 개인적인 실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서 몇가지 새로운 용어를 쓰기도 하는 등 마하라지와 비슷한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할 일이 없으면 아파트의 이쪽 코너에서 저쪽 코너까지 이리저리 걸어다니곤 합니다.

 

 

그렇게 걸어다니던 어느 날 저는 저의 만트라가 저절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걸어다니다가 피곤해서는 5분 정도 누워 있었습니다.

저의 아내가 제가 5분 정도 누워있다가 중요한 할 일이 있는듯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겨우 5분 누워 계셨는데 20분 정도 쉬시지 그러세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쉴려고 누워 있었던게 아니라우. 나는 누워 있었고 휴식이 저절로 일어난게지."

 

 

제가 누워 있을 때면 노래(만트라)가 저절로 일어납니다.

저의 만트라는 쉬바 만트라입니다. 이것이 저절로 일어났어요.

제가 의식을 하든 의식을 하지 않든 이 만트라가 자발적으로 저절로 일어납니다.

제가 우연히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에서 "자발적인 자파(만트라의 반복)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참자아를 깨달은 것이다."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저에게는 매우 놀라운 기쁨이었습니다.

 

 

 

- 한 인터뷰에서 라메쉬는 깨달음의 결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겠지만

아주 아주 깊은 연민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대립이 점점 더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 라메쉬는 많은 책들의 저자이기도 하고 이 책들은 거의 자발적으로 쓰여졌습니다.

라메쉬가 그가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는지와 그것이 그의 깨달음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제가 마하라지와 있을 때에는 어떤 때에는 - 한밤중에 주로 - 저는 벌떡 일어나서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보면 자유로운 운문의 형태였죠.

시는 제가 학창 시절에 절대로 싫어하는 것이었어요.

시는 저에게 낯선 것이었지만 처음으로 글을 쓴 것은 시의 형태였어요.

저는 그것을 타이핑했고 그것을 마하라지에게 읽어주고 번역을 해주었습니다.

"이 글들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마하라지는 저에게 그 글들을 복사하라고 했고 저는 몇장을 카피를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공짜로 나누어주려고 했지만 마하라지는 장사꾼이었죠.

그가 말하기를 "자네가 그것을 공짜로 나누어주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게야. 적어도 5루피는 받아야지."

그래서 처음으로 나온 것이 "The Whole Story"였습니다.

1979년의 일이었죠.

 

 

이 글들이 저절로 왔지만 그것이 제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깨달음의 도상에 있다는 것을 가리킬뿐이었죠.

그것은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일들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일어날 수도 있죠.

몸-마음 유기체는 어떤 특정한 변화들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 어떤 것은 격렬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죠. 그리고 어떤 변화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완전히 상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탐구란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끝났을 때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런 질문이 없죠.

실재인 것은 너무나 실재이고 비실재인 것은 비실재로 보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거대한 비개인적인 전체의 움직임의 경험이 있습니다.

There is a great experience of the impersonal functioning of Totality.

 

 

 

from It So Happened That

 

 

 

 

 

 

 

깨달음은 그것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까지 늘 자유로웠다는 믿음과 확신의 문제이며

이 확신에 따라 행동하는 용기에 관한 문제입니다.

 

 

 

 

출처 : 한국트랜서핑센터
글쓴이 : 아인소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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