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생각들은 점점 떨어져 나갑니다.
하루 중에 일어나는 생각들 - 그가 나에게 했던 일. 그녀가 나에게 했던 일. 내가 했었어야 했던 일..
- 이런 모든 생각들은 무의식 차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가지 생각에 머물 때 이러한 무의식적인 생각들은 고요해집니다.
그들은 뒷배경으로 떨어져 나가고 이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여기서 보듯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입니다.
당신이 어떤 무언가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질 때면 다른 나머지 생각들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처럼 만약 우리가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알기를 원한다면
-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를 진정으로 강렬하게 열망한다면 다른 생각들은 떨어져 나가고 마음은 매우 집중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대답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옵니다.
대답은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생각들이 고요해짐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답이 항상 거기에 있었고 참자아인 앎의 영역에 있었다는 것을요.
처음 출발은 대답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었습니다.
그 열망이 강할 때 우리는 대답을 얻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인간의 위기가 신의 기회가 된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 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죠.
극한의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거기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열망을 너무나도 강하게 만들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여 그 대답을 발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처음 제가 탐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생각>이 나에게 대답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누구 못지않게 활동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전 그 당시 막다른 곳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2번째 심장마비가 일어났고 의사들은 나에게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했죠.
아마 얼마 살지 못하게 될거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나의 마음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보다 더 활동적이기도 했지만
대답을 찾겠다는 엄청난 열망이 나로 하여금 오로지 하나의 질문에만 집중하게 했습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집중이 그것을 이루어냈습니다.
제가 처음 탐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아무런 형이상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실제로 저는 모든 종교나 형이상학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고 동화같은 이야기를 믿는 나약한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대답을 얻어야만 한다는 너무나도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에 대답은 매우 빨리 나에게 왔습니다.
3개월만에 저는 물질주의자라는 극단에서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로지 정신뿐이라는 완전히 반대의 극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답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비록 나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시끄러운 마음중 하나였지만 대답이 나에게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자동적으로 삼매와도 같은 것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질문에 집중했기 때문에 세상을 잊게 되었고 몸이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순수하게 하나의 생각만을 의식했고 오로지 그 생각만이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듯 했죠.
그것이 생각과 생각하는 자가 하나가 되는 몰입입니다.
한가지의 생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잃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마음이 매우 집중된 상태이고 그 대답은 항상 거기에서 발견됩니다.
나는 처음에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이지? 내가 원하는게 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나는 행복이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내 삶을 돌아다 보았고 내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매우 사랑받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계속 나아가서는 나는 나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지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하!! 알겠어. 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밀어부쳤습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지성이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후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내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들은 내가 창조한 무언가였죠.
마침내 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대답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3개월간 계속되었고 나는 내가 끝까지 갔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주제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길을 가야할지를 몰랐지만 나는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이 세상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당신은 온 세상이 당신일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당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만이 있고 그것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상태는 아닙니다.
당신은 거기서 빠져나오게 되고 여전히 마음이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을 조종하는 마음이 없을 때까지 다시 탐구의 명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신이 생각의 습관들 마음의 경향성들을 모두 없앴을 때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사용할 수가 있고 당신이 마음의 주인이고 감독이 됩니다.
더 이상 마음이 당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마음을 결정합니다.
현재 우리는 90% 이상의 시간을 무의식적인 마음에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Q: 그것은 의식적 마음과 무의식적 마음 둘 다인가요?
Lester: 글쎄요. 의식적인 마음은 쉽게 컨트롤 할 수가 있지만 무의식적인 마음은 쉽게 볼 수가 없어요.
그 부분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들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것들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도록 설정한 메카니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메카니즘을 우리의 몸에 적용시켰고 그래서 몸은 저절로 작동을 하고 있죠.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생각들에도 이러한 메카니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Q: 왜 우리는 지금 현재 관심 있는 생각을 제외한 나머지 생각들에 그런 메카니즘을 적용한 것이죠?
Lester: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을 제일 첫째로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죠.
우리는 생각이 없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때로 당신이 손으로 뭔가를 작업할 때 매우 행복한 것을 느낀적이 있을겁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들이 잠잠해졌기 때문이죠.
Q: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은 그 당시에 고요해지고 혹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요?
Lester: 글쎄요. 의식적 차원에서 그렇고 심지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도 더욱 고요해진거죠.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들을 원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생각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겁니다.
심지어 행복한 생각들조차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뭔가를 즐기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즐거움을 유지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건 이 생각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죠.
기쁨의 생각은 그것이 영속적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기쁨의 생각조차도 제한된 것이니까요. Even thoughts of happiness are limited.
진정으로 행복한 상태는 생각을 벗어난 상태입니다. The really happy state is the no-thought state
그것은 앎의 상태이고 생각 너머의 상태입니다. it's the state of Knowingness and is beyond thought.
우리는 처음에 명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명상은 몇 년의 세월동안 명상을 해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의문거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명상에서 가장 좋은 타입은 질문을 가지고 하는 명상입니다.
당신이 아무런 의문 없이 그저 기분 좋은 고요한 상태로 떨어져 들어간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참지식을 얻게 되는데에는 아무런 진보가 없습니다.
Q: 단지 고요해지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진보가 없다는 것인가요?
Lester: 당신이 고요한 상태로 움직여 갈 때 진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상태는 생각으로 시끄러운 상태보다 더 좋은 상태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한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무지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무지합니다.
그러한 무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한함에 대한 참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명상 안으로 들어가서 평화로움 고요함속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진 마십시오. 그리고 대답을 얻으십시오.
그 대답들을 얻기 위해서 먼저 고요해지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오직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이 우리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아주 쉽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니 우리가 가장 빠른 길을 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서는 마침내 대답을 얻게 되는거죠.
나는 이 의문을 명상과 결합시키고자 합니다.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 명상은 의문과 함께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박타(역주 : 박티요가 수행자. 신이나 스승에 대한 헌신을 위주로 하는 요가 행자)들보다는
즈냐니(역주 : 즈냐니 요가 수행자. 知요가라고도 하며 지적인 의문과 명상을 통해 수행하는 요가 행자.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도 즈냐니이며 아드바이타라는 불이원론으로 수행을 삼음)들이 유리한 것이죠.
순복과 헌신은 우리를 좋은 기분으로 이끌고 그것으로도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즈냐니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말하죠. “좋아. 여기서 멈추진 마. 대답을 찾아보자구.”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때만이 우리는 이 길의 끝에 도달하게 되는겁니다.
그러니 명상을 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의문을 제기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서 그 대답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고요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다음 단계로 자연스레 나아가서 대답이 거기에 있는 것이죠.
Q: 우리가 만약 스스로가 그다지 발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는 것도 괜찮나요?
Lester: 물론이죠. 아주 좋습니다.
Q: 제 생각에는 선생님께서는 이쪽에 대해서 많은 지식이 그다지 없으셔서 훨씬 더 쉽게 해내신 것처럼 보입니다만..
Lester: 맞습니다. 그 점에서는 제가 아주 운이 좋았죠.
왜냐하면 이런 주제에 관한 지적인 지식은 방해물이 되거든요.
에고는 실제적인 체험보다는 그것에 대한 지적인 지식을 꾸며내고는 그것으로 대체하죠.
제가 이 분야에 대해서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주 아주 운이 좋았던거죠.
Q: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이 무지무지 어렵다라고 하는 생각도 전혀 알지 못하셨던거구요.
Lester: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은 다른 이로 하여금 지적인 지식의 장애물을 놓아 보내는데 let go 도움을 줄 수가 있죠.
저는 당신을 이 방향으로 찔러댑니다. 그러지 않은가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것도 믿지 마세요. 처음부터 시작하세요. 당신이 하나하나 스스로 입증함으로써 자신의 굳건한 지식을 쌓으세요.”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해야만 합니다.
Q: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는건가요?
Lester: 그렇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유일하게 쓸모있는 것은 오직 당신이 경험한 것입니다.
운전을 배우는 것을 비유로 설명해드리죠.
만약 제가 운전교습서를 한권 읽고서는 시동을 걸고 기어를 바꾸고 하는 등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제가 진정으로 운전하는 법을 아는 것일까요?
아니죠. 제가 실제로 운전을 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제가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위대한 스승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고 그들이 경험한 것이라고 하는 태도를 견지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입증해야만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진실은 오로지 하나의 실재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고 그것은 모든 우주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그것이 우리 자신의 참자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은 우주 공간 저 멀리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의 참자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는 무언가이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나 자신의 참자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자아를 신으로 아는 것은 신을 저 멀리 우리와 떨어진 곳으로 두는 것보다 더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입증해야만 합니다.
증거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더 많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더욱 더 받아들일 것이고 마침내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명상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할까요?
Group: 네.
Lester: 명상에 도움이 되는 모든 방편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명상하는 것이 어렵다면 챈팅을 함으로써 준비 작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챈팅은 우리의 마음을 챈트 그 자체에 두게 함으로써 하루 일과 중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떨어뜨리고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하거나 특정한 요가 아사나를 함으로써 똑같은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마음을 더욱 고요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우리의 무한함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유일한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것은 또한 한계지우는 생각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죠.
그리고 명상을 할 때 우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서 우리가 이 무한한 존재임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명상은 수동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명상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을 단순히 공백 상태로 만들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명상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항상 의문과 함께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명상을 연습할수록 이것은 점점 더 쉬워집니다.
진실로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가속도가 필요합니다.
명상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즐거운 것이 된다면 우리는 명상에 대한 열정과 바람으로 명상에 들어갈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가속도가 붙게 되면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져만 갈 것이고 마침내 무한한 존재가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웃음을 터트릴 것입니다.
Q: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손에 집중하는 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저에겐 그렇게 보이거든요.
Lester: 도움이 된다면 좋습니다.
Q: 그게 방해되지 않을까요?
Lester: 오! 아닙니다.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센터들이 몇 개 있어요.
좋은 센터는 눈썹 사이에 있는 여기죠.
여기에 집중하면 당신의 마음과 몸이 떨어져 나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곳은 제 3의 눈. 아스트랄의 눈. 영안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달할 때 우리는 아래의 센터들로부터 끌어올려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트 센터를 더 좋아하기도 하죠.
하지만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좋습니다.
Q: 저는 제 3의 눈에 집중하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나 I"를 하트 센터에까지 아래로 가라앉게 합니다.
Lester: 하트 센터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느낌의 센터이고 느낌은 생각보다 참자아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영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거에요.
만약 당신이 탐구의 요가를 행하는 사람 vichara jnani 이라면 아마도 하트 센터가 되겠지만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 될 것입니다.
(역주 : vichara jnani는 탐구의 요가인데 여기서는 아트만이 오른쪽 하트에 머문다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설명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당신이 라자 요가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제 3의 눈이 되겠죠.
제가 집중을 말할 때면 그것은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건 아닙니다.
그것은 대답을 얻기를 원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질문의 대답을 구하는 것에 집중하세요.
Q: 저는 대답을 얻는다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거기에 도달한다는 개념의 생각만 있습니다만..
Lester: 아시다시피 인생에 있어서 당신이 강렬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고 또한 어떤 영적인 길에서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다만 우리의 기쁨이 이 세상속에만 있다고 하는 무의식적인 신념이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대답을 얻지 못하게 하는거죠.
Q: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무지 쉬워보입니다만..
Lester: 그것이 얼마나 쉬우냐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강렬하게 대답을 원하느냐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죠.
This Session was recorded at Self Haven. February, 1967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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