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제껏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왔고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마지막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지금껏 이야기해온 것들을 한번 정리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존재가 바라는 궁극의 목표이자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이어야 한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슬픔의 흔적도 없는 완전하고도 전체적인 행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서 이걸 구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하지만 어쩐일인지 늘 어긋나기만 했죠.
우리가 우리의 목표를 놓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목표에 대한 명확한 비젼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는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처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한 우리는 결코 완벽한 행복이라고 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와서는 이렇게 말하죠.
“정신 차리세요. 여러분들은 수많은 생애 동안 잘못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밖을 쳐다보지 마시고 여러분의 내면을 바라보세요.
오직 거기에서만이 여러분들이 일생 동안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될거라구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레스터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의 참자아를 찾으세요. 거기에 당신의 완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그만 두세요.
이렇게 할 때 여러분들은 무언가를 욕망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고 여러분들이 즐거움이라 부르는 위안을 얻게 될겁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 욕망이라는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거기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욕망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해서 당신을 갉아먹고 있는거죠.”
출발점은 당신으로부터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찾아나서는 길을 가야만 하고 오직 당신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 입증할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것을 증명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써먹을 수가 있어요.
우리가 행하는 이 과학의 독특함은
- 그리고 이건 정말 과학적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은 이것이 모든 과학 중의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
이것이 주관적인 과학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내면에서 그것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살펴볼 수가 있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오직 그것을 우리의 마음 안에서 혹은 나아가서는 우리의 존재 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는 이 진실을 경험해보세요.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만 우리는 참된 앎에 도달하게 됩니다.
방법들은 수없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가장 뛰어난 방법은 모든 이들이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명상할 때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항상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있을 때라도 우리가 뭘 하든지간에 우리는 마음의 배경에 이 질문을 항상 깔아둘 수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스스로 우리 자신에게 명확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진짜 대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한계를 지우는데 필요한 도구일뿐이니까요.
모든 생각은 제한되어지고 한계지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주는 대답은 그것이 무엇이든 옳은 것이 될 수가 없죠.
진짜 대답이 오는 방법은 단순히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몸-마음이라고 상상한 스스로에게 덧씌운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생각들이 고요해지게 되면 한계 없는 존재가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참자아의 빛이며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단지 온통 한계지워진 생각의 관념들로 덮여져 있는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는 고요하게 대답을 기다리십시오.
아마도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러한 생각들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죠.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었을 때 “이 생각들은 누구에게 일어나는 것이지?” 라고 질문하면
그 대답은 당연히 “나에게”가 될 것이고
“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원래의 트랙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죠.
이런식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주의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행위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훌륭한 연습이 됩니다.
단지 주시자로 있으십시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 하신 것이라.” 라고 하는 태도를 익히십시오.
(우리 그룹 중 몇몇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구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더욱 주시자가 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몸-마음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더욱 더 참자아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제안한게 이제 2가지가 있죠?
한가지는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질문을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행위자가 아니라 주시자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일들이 그냥 일어나게 하십시오. 삶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Let things happen; allow life to be.
이것이 바로 우리가 최고의 상태에 있을 때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어요.
겸손함 미덕 친절함 정직 등등
이러한 것들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도움은 행위자가 아니라 주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자아가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낼 때 이것은 어마어마한 경험입니다!
이것은 가두어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터져나갈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전지전능함과 편재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을 한번 보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 상태에 확고히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만이라도 경험을 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이 확고해질 때까지 놓지 않게 될겁니다.
당신은 다시 그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게 될 것이고 또한 계속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2번째에는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될 것이고 3번째에는 그보다 더 오래 머물 것이고
마침내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그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상태를 성취했을 때 우리가 좀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곳에 현존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세상에서 움직이지만 차이점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다른 사람들의 몸을 똑같이 우리의 참자아로 보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과 모든 사물들을 우리의 참자아로 보게 됩니다.
모든 것들을 “나 I”로 보는 것은 우리에게 신 혹은 참자아로 불리우는 우주를 관통하는 단일한 하나임 singular Oneness 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로 그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몸에 일어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 몸이 뭉개어지더라도 우리는 그 몸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인 영원한 존재를 알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머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서 알아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는 이전에 그가 하던 일들과 행동을 그대로 할 것이고 계속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에고에서 벗어났습니다. He is completely egoless
그는 자신의 몸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인류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간에 결코 에고에 의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의 몸은 일상적인 수명을 살아갈 것이고 무지한 자들의 눈에는 대개의 모든 신체가 그러하듯이 소위 말하는 죽음이란 것을 거치고 관 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몸과 연결되어 있는 그는 이러한 죽음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그는 온 세상과 몸이 우리가 밤에 꿈속에서 도시와 세상 그리고 장면들을 정신적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결코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깨어있는 잠에서 깨어나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단지 꿈이었고 결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항상 존재했던 유일한 것은 바로 나의 존재. 절대적인 진실. 모든 있음의 있음. 무한함. 완벽함. 전지함. 전능함. 편재함입니다.
그러니 다시 말씀드리자면 오늘 제가 드리고자 하는 2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가장 뛰어난 방법인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요함속에서 이 질문을 할 때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이 생각은 누구에게 일어나는가?”를 질문하고
그 대답이 “나에게”가 되면 “그렇다면 그 나는 누구인가?” 라고 다시 트랙으로 되돌아와서는 우리가 최후의 대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하시란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행위자가 되는게 아니라 주시자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한 말이 다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질문 있나요?
Q: 행위자가 되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계획 같은건 안 세우시나요?
Lester: 네. 계획 같은건 세우지 않아요. 그냥 일이 일어나게 하는거죠.
렛고우하시면 당신은 직관을 통해 인도받게 될겁니다.
생각을 꾸며서 계획을 세우는 대신에 당신은 순간순간 완벽하게 옳은 순간에 정확하게 옳은 일들을 하게 될겁니다.
Q: 그러면 이런 상황이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뭔가를 하고 싶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움직여질 때까지 침대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겠어.” 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집세도 내지 못하는채로 말이죠.
Lester: 그러니 그는 거기에서 움직여야만 하죠.
만약 우리가 어디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거기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곧 우리가 거기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겁니다.
보세요. 밥. 저는 지금 고차원의 레벨에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완벽하고 모든 것이 모든 순간에 절대적인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상태 말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생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모든 순간에 당신은 내면으로부터 해야할 올바른 일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매순간마다 직관적으로 인도받을 것이고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지금 당신이 그 상태에 있지 않다면 당연히 당신은 생각을 해야만 하고 계획을 세워야만 하겠지요.
Q: 그런데 우리가 연습을 할 때는요. 그러니깐 처음에는 2가지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일들이 저절로 잘 풀려갈 때가 있고 그러다가 걸림돌이 생기고 거기에서는 계획을 짜야만 하구요.
Lester: 당연히 그렇죠.
최고의 상태에서는 당신은 앎으로서 행동합니다. 당신은 그저 순간순간 알게 됩니다.
누군가가 “알겠어. I know it!” 라고 느낄 때의 바로 그 느낌이고 거기에는 아무런 생각이 필요가 없고
단지 “알겠어. I know it!” 라는 것만이 있습니다.
Q: 제 경험을 통해서 저도 알 것 같아요.
저는 때때로 뒤로 미끌어지고는 계획을 짭니다.
어떤 때는 그 계획이 매우 쉽고 빠르게 나에게 오지만 가끔은 정말 죽어라 애를 써야만 합니다.
그리고는 점점 뭐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게 되는거죠.
하지만 어떤 때는 그냥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어떻게 일이 될지 훤하게 알게 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요.
Lester: 당신이 말한 “안다 know” 라는 말이 바로 열쇠입니다.
당신은 “알겠어. I know it!”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런 기미도 없죠.
그리고 그 앎이 그냥 일어납니다. 바로 그게 열쇠입니다.
그것이 바로 앎knowingness의 영역입니다.
그것을 항상 유지하십시오. 그 앎이 와서는 머물 때까지 계속 노력하세요.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빨리 성취하느냐 하는것은 그것을 얼마나 강하게 열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 최고의 상태를 더욱 열망할수록 그것은 더욱 빨리 다가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이것을 성취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구상의 인류 대다수는 아마도 앞으로 몇백만년이 걸릴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의식적으로 그것을 탐구한다면 바로 이 생애동안 그것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신의 축복이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서 그 최고의 경지를 성취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 완벽한 의식을 방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항상 우리를 격려하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강요할 권리가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활짝 열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축복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류의 의식의 수준에서 볼 때 인류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들은 너무나도 강하게 이 제한된 몸이 자신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고
오랜 세월동안의 습관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몸을 렛고우하는 것은 쉽지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볼 때는 이미 죽었지만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여전히 여기에 있는 그 위대한 영혼들의 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우리가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들을 꿈속에서나 비젼 속에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저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는 스낵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와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중 몇몇은 예수가 이 방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만큼의 사인을 우리에게 줍니다.
만약 그가 이 방에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고 갑자기 나타난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고 그 때문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우리에게 오는 방식은 우리가 그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여기에 와서 몇몇 사람들에게 사인을 보냈지만 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죠.
하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포인트는 우리는 위대한 마스터들의 도움에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다른 위대한 영혼들은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의 완벽함을 알게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의 손길은 항상 우리에게 뻗어 있습니다.
이것을 명심하는게 좋습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도움에 더 열 수가 있을테니까요.
Q: 어떻게 그 도움을 요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Lester: 여러분들은 예수가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 있다는 것과 우리가 서로 만나는 것처럼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단지 그것에 열려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 도움은 항상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Q: 그러기 위한 말씀이나 우리가 지녀야 할 생각들이 있나요?
Lester: 예.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일반적인 원리를 말해주는겁니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코 예수를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 아닐 것이라 기대하진 마세요.
하지만 그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초라한 사람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언제든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타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Q: 레스터.. 예수는 그리스도로 나타날 것이지만 변장을 하고 나타나지는 않겠죠? 문 앞에 있는 거지처럼요.
Lester: 아닙니다. 유일한 변장은 우리가 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로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한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를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황홀한 마력과도 같은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단순함인 그의 의식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Q: 겸손함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Lester: 네. 가장 위대한 겸손함은 순복surrender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죠.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아버지 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신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행위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분리된 개인이라는 감각인 에고를 내려놓는 순복입니다.
Q: 만약 당신이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내려 놓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우리가 이전에 다른 사람들을 자신으로 보고 자신에게 하듯이 다른 이를 대하라고 한 것 같은데요.
이 다른 사람들은 누구죠?
Lester: 지금 당신이 있는 곳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은 당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와 관련이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당신이 나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나를 미워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태도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나를 미워한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온전히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당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오직 유일한 하나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분리된 상태로 이 하나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질문한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우리가 사랑할 때 - 그리고 오로지 사랑만이 - 우리는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미워함이 없이 오로지 사랑만을 한다면 우리는 결코 상처받을 수 없고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온전하고 완전하며 신성한 사랑을 할 때 당신은 결코 상처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미워함이 없는 단지 사랑일뿐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다른 뺨을 내어주고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는 그러한 사랑입니다.
Q: 사랑이 이해라구요?
Lester: 당신이 온전히 사랑할 때 다른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곧 이해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단계 아래로 내려가면 다른 이가 원하는 것을 그가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고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Q: 그럼 우리의 원수는 누구죠?
Lester: 실제로 우리의 원수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어떤 것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할 수도 없어요.
언젠가는 당신도 이것을 알게 될겁니다.
우리의 의식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을 말이죠.
Q: 그럼 잘못된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우리의 생각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더 나아질 수가 있죠.
Q: 선생님께서 이해를 말씀하실 때 논리적인 의미에서의 이해를 말씀하시는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들이 한 것이 옳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의문도 없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씀하시는건가요?
Lester: 그것은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는 우주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잘못 인도되어진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는 단지 잘못된 곳에서 신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한 말이 이해가 되나요? 이런게 이해라는 것입니다.
Q: 그의 마음 속에서는 그게 행복일 수도 있다. 그런거죠?
Lester: 네. 그는 그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히틀러조차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타고난 본성이 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한 말이 그가 한 짓 his program 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프로그램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을 길 잃은 어린 양으로 보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한 일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들은 길 잃은 어린아이와도 같아요.
그리스도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최고의 경지를 성취하세요!
-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July 12, 1965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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