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받아들임
GROWTH AND RECEPTIVITY
행복 그 자체가 반드시 한 사람의 깨달음의 상태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주민들은 우리처럼 행복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더 행복합니다.
문명의 첨단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은 대체로 그들만큼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즐거움은 대부분 육체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좀 더 정신적인 것들이 많고 그래서 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즐거움은 더 많은 기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영적인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고 그러므로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은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깨달음에서 얻는 행복은 분명히 영적인 성장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에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졌고 그러므로 영원히 조금 더 행복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쾌한 것들을 피하거나 그것에서 도피하는데서 오는 행복은 성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을 더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우리가 피하고 있는 불쾌한 것들에 계속 묶여있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마주하고 바라보고 내려놓을 때까지 그것들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때때로 떠오를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가 그것들을 모두 렛고우할 때까지 말이죠.
그러므로 그것들을 내려놓으려면 마주해야지 피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할수록 더욱 행복해져간다는 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바뀌지 않는 총체적인 행복을 얻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성가시게 하는 강박적인 무의식적 생각들로부터의 자유이고 웰빙의 느낌입니다.
그것은 안정감이고 평화의 느낌입니다.
비록 일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보이고 세상이 우리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평화를 내면에서 느낍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하는 것은 이 내적인 상태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비참한 사람도 일시적으로는 행복하게 웃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영속적인 자유의 상태를 그런 것으로 재어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행복이나 자유로움의 상태를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모든 것들이 그 사람에게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를 체크함으로써입니다.
이 방법을 스스로를 체크하는데 사용해보세요.
세상의 일들이 잘못되어져 간다고 생각될 때 당신의 행복의 상태를 확인해보세요.
Q: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더 행복한 것을 볼 때 좀 짜증이 나지 않나요?
아마 질투 정도는 할 것 같은데요?
Lester: 그렇습니다. 그것을 질투라고들 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더 행복한 것을 보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죠.
심지어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라도 말이죠.
이러한 일들은 커플들 사이에서 영적으로 성장할 때 일어납니다.
한 사람이 앞서 나아가면 그 짝은 무의식적으로 화가 나게 되고 자신의 짝을 깎아내리려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끔은 의식적이 되고 심지어 의식적이 되더라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두사람이 있을 때면 언제나 좀 더 성장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상대편을 약간 위로 올리려 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자신의 짝을 약간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서로를 향해 움직여 가는 것이죠.
이것은 두 명의 존재가 서로 만날 때면 언제나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행동입니다.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것으로 돌아가자면 한사람의 평화가 얼마나 안정적인 것인가가 바로 그 사람의 영적 성장의 가장 좋은 잣대입니다.
그 사람이 시험 받고 이상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평화로운 것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이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평화는 진짜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가 제가 말하는 진짜 평화이고 그것은 여러분의 초연함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평화가 흔들리거나 방해받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그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는 에고를 상당히 많이 렛고우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에고만이 방해받을 수 있고 참자아는 결코 결코 흔들리거나 방해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참자아에 머물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상태를 알고자 한다면 역경계에서 당신이 어떠한지를 확인해보세요.
당신의 성장을 당신의 가장 윗부분으로 재지 말고 당신의 제일 아래 부분으로 확인해 보세요.
당신은 당신의 성장이 싸이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오르락 내리락 한단 말이죠.
하지만 제일 아래 부분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우리는 그 제일 아래 부분이 행복인 곳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가장 윗부분은 더 높은 황홀 평온 고요함과 깊고도 초연한 평화로움이 될 것입니다.
Q: 어느 부분에서 이러한 기쁨 축복 평화를 느낄 수가 있나요?
Lester: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다 다릅니다.
실제로 그것은 당신의 존재의 센터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 센터가 어디이든지 말이죠.
지금 우리는 이 세션의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이 그룹이 흘러 넘치는 기쁨의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과거의 지난 세션들을 돌아봐도 처음에는 낮은 포인트에서 시작해서는 마지막에 가서는 높은 곳에 도달했어요.
Q: 왜 그런지 아십니까?
Lester: 네. 그렇지 않아도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설명해 드리고 싶었어요.
왜 아래로 내려가십니까?
우리는 지성적인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는 길을 알고 있어요. 왜 아래로 내려 가세요?
여러분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감과 고양감을 어떻게 하면 느끼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에 항상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멍청한 일 아닐까요?
여러분들이 저와 헤어지고 나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을 가지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충분히 렛고우하지 않아서입니다.
저와 함께 있을 때 제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의 본래 모습인 무한한 존재를 가리켜 보입니다.
알다시피 여러분들은 그것에 반대되는 생각들을 렛고우하고 점점 더 자유롭고 높이 비상하는 느낌을 가지죠.
하지만 저랑 헤어지고 나면 남아 있는 무의식적인 한계의 생각들이 다시 올라와서는 여러분을 차지하고는 이리저리 굴려대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거죠.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무의식적인 생각이 남지 않을 때까지 렛고우를 계속 해서 마침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오직 그때가 되어야 여러분은 만족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더욱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적인 이해는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고 처음에는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하지만 지적인 이해가 당신을 더 이상 앞으로 데려갈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은 지성의 최고봉에서 멈추실건가요? 아니면 계속 나아갈건가요?
저는 계속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지성을 렛고우하거나 망각하거나 억압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말은 지성을 넘어서 나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또 다른 커다란 도약을 제안하고 있는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이 아닌지를 말함으로써 말이죠.
그 다음 단계는 지적인 이해가 아닙니다.
지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저는 이제 여러분들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습니다.
그럼 뭘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참자아를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여러분의 참자아를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만약 저에게서 뽑아낼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 우리가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여러분들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이제껏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경험이 여러분들의 앎이 될 것이고 그것을 경험한 후에는 여러분들에게 자유에 대한 더 강한 열망이 생길 것이고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애매하거나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지적인 이해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것이 뭘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흘러들어오는 힘의 양을 결정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것은 여러분들의 한계를 렛고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더욱 수용적이 될수록 더욱 많은 힘이 저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흘러가게 되고
여러분이 자신의 참자아를 경험할 수 있는 곳까지 여러분을 고양시킬 것입니다.
레스터라고 하는 제가 그렇게 하는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만큼 저를 통해서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을 높이 고양된 상태로 들어올릴 것이고 그 상태를 경험함으로써 여러분들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것. Thou art That.” 이라는 것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Q: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죠?
Lester: 저를 통해서 나오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행복은 당신의 안에 있지 밖에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받아들이는 것으로요.
이제껏 우리가 왔던 길은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바라보고 렛고우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생각들을 렛고우함에 따라 여러분들은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마음은 더 고요해졌고
여러분의 참자아는 더 이상 모호하지 않고 여러분은 자신의 참모습인 참자아로 더욱 많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이 할수록 여러분들은 저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흘러들어가는 힘에 의해 자신의 참자아에 더 많이 끌릴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이 궁극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꽤 많이 마음을 고요하게 했습니다만 더 나아가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번에 “누가 앉아서는 즉시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어떤 생각도 들어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어봤던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마스터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는만큼 당신은 마스터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전보다 훨씬 더 고요해졌습니다.
다음 단계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은 더욱 고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지적인 탐구나 이리저리 논쟁하는 것을 통해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참자아의 고요함을 바로 경험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나아갈 것입니다.
Q: 마음을 고요하게하고 아무런 생각도 들어오지 않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죠?
그냥 공백같은 것인가요?
Lester: 아닙니다. 그것은 공백이 아닙니다.
공백이 되어버릴 마음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지한 앎의 영역에 있는 것이고 더 이상 생각을 해야할 필요가 없을뿐입니다.
당신은 그저 모든 것을 그냥 알게 되고 매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당신은 영감이라고 불리우는 느낌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가끔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이란 단지 여러분들의 생각들의 묶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그만 부분은 의식적이지만 주된 부분은 볼 수 없는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죠.
마음은 여러분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볼 때면 단순한 것입니다. 단지 생각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Q: 무의식적인 생각이란 그 순간에 생각되어지지 않고 있는 생각인거죠?
Lester: 그게 아닙니다.
그 순간에 생각되어지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생각되어지지는 않는 생각인거죠.
무의식적으로는 그 순간에 생각되어지고 있는겁니다.
Q: 그럼 그것이 의식적인 생각과 무의식적인 생각의 차이점인가요?
Lester: 그렇습니다.
무의식적인 생각은 지금 이 순간에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은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은 심장의 박동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호흡은요? 소화를 시키는 화학 과정은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나요?
글쎄요. 우리는 이런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Q: 저는 그것을 생각해본적이 없네요.
Lester: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몸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비록 의식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지금 작동하고 있는지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몸을 작동시키는데에 관련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겁니다.
그 생각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작동하고 있습니다.
Q: 그것은 자동적인 것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자동화된 과정을 작동시키는 사람은 누구죠?
우리 자신입니다.
원래 몸을 작동시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주 유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그것을 자동화시켰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이제는 그 생각들이 우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무의식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바꾸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게 되면 우리는 바꿀 수가 있게 되죠.
우리는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다시 몸에 대한 통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렛고우하는 것입니다.
이 습관적인 과거의 생각들이 우리를 자동적으로 속박하고 있습니다.
모든 습관적인 생각은 어느 정도의 자유와 행복을 앗아가는 속박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과거의 습관적인 생각들을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렛고우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완전히 깨닫고 해탈한 마스터가 된 것이죠.
Q: 그러한 습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말 몇마디가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것이군요.
우리가 어떤 말들을 들으면 우리는 말 그대로 미쳐버립니다.
또는 어떤 말들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죠.
Lester: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는 이런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모두 렛고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멋진 작업을 해왔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통해서 말이죠.
저는 이제부터 우리가 좀 더 나아갈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좀 더 직접적으로 즉 우리의 참자아를 경험함으로써 마음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명상을 하면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명상’이라고 하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고 싶군요.
제가 명상이라고 말을 할때면 한가지 생각만을 붙들고 나머지 다른 생각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한가지 생각이 의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고 집중되어집니다.
마음이 집중되었을 때 당신은 참자아를 경험할 것이고 그것이 당신의 모든 질문에 답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속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가지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줄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자리에 앉는 순간 마음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생각이 올라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생각들을 렛고우하면 할수록 우리가 렛고우해야 할 생각들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언젠가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져서는 우리가 자신의 무한한 <존재>를 완전히 볼 수 있을 때가 올 것이고 남아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한번에 떨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이 없을 때 우리는 자유롭고 오직 우리 자신의 무한한 참자아만이 있습니다.
Q: 제 마음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기만 합니다.
Lester: 그게 아니고 당신이 더 많은 무의식적인 생각을 보는 것입니다.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게 아니고 그 생각들을 더 많이 의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신을 굴려대던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죠.
당신이 명상을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날겁니다.
그리고 연습을 통해서 언젠가 당신은 다른 생각들은 들어오지 않으면서 하나의 질문 하나의 생각을 붙들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거기까지 이르면 당신은 급속도로 나아가게 됩니다.
당신이 모든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내려놓으면 당신은 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당신의 <존재>가 바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Q: 저는 명상할 때 느끼는 기분이 뭔지 알고 싶은데 아주 좋은 음악을 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건가요?
Lester: 네. 그것은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지면서도 고요한 느낌입니다.
Q: 그러면 제가 이해한 바로는 명상이란 것은 생각들을 만지작 거리는게 아니라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을 타고서는 그것이 확장되어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겠군요.
Lester: 그렇죠.
하지만 그 기분 좋은 느낌은 생각들을 고요하게 해서 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명상의 느낌이 음악을 들을 때의 느낌보다 훨씬 더 즐거울 때가 올 것입니다.
Q: 제가 느끼기에는 무언가가 너무나 솟아 올라서는 마치 제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Lester: 당신은 결코 터져버리지는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 안에는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것이 있어서 그것이 한꺼번에 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Q: 그렇다면 명상은 우리의 받아들임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군요.
Lester: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명상을 할수록 우리는 더 수용적이 될 것이고 우리가 더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더 명상을 잘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들이 더욱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명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힌두교도가 되거나 요기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100% 아메리칸이면서도 뛰어난 명상가가 될 수 있습니다.
명상이란 것은 단순히 하나의 질문이나 생각을 붙들고서는 다른 모든 생각들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질문이 당신의 존재에 관한 것일 때 그것이 올바른 명상입니다.
명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가지의 질문을 붙들고 있는 동안 들어오는 다른 생각들을 렛고우하는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그 한가지 질문은 그것이 무엇이든 대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완전한 대답을 얻을 때 우리는 궁극의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Q: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대답을 하려고 애쓰게 되지 않나요?
Lester: 네. 당신은 그렇겠죠.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대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결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깨달음은 마음을 없애는 것이고 그 질문을 들고 있는 마음은 스스로를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 자신을 없애야 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마음은 결코 자신을 없애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을 때 마음은 영원이 다할 때까지 절대로 그 대답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지적인 이해는 여기까지만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있는겁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그 대답을 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마음은 그 자체가 제한되고 한계지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의 대답은 무한입니다.
마음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 대답이 올 때면 그것은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 옵니다.
오직 마음을 고요히 했을 때만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당신의 본래의 모습인 이 무한한 참자아를 가려서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Q: 하지만 저는 이면에서 뭔가 붙들만한 것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빛나는 이러한 느낌이 그것일까요?
Lester: 네. 만약 당신이 그 빛을 살펴본다면 그것이 존재의 “나임 I-ness” 이라는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Q: 우리가 간혹 가지게 되는 이 느낌이 참된 존재의 빛이 비춰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무리 조그만 부분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계속해서 가져야 할 경험이 되겠군요. 그렇죠?
Lester: 그렇습니다.
오직 그것만을 경험해가면 그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and that is It.
그리하면 항상 “나I - 나I - 나I - 나I” 의 경험만을 가지게 될 것이고 당신은 도달한 것입니다.
Q: 이제까지 저는 오로지 지적인 이해만 있었는데 지금 이순간이 제가 처음으로 가지는 확고한 체험인 것 같습니다.
Lester: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항상 그러한 경험의 느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Q: 제가 발견한게 바로 그겁니다. 전 지금 이 빛나는 느낌과 하나가 된 것 같아요.
Lester: 그렇죠. 그 빛나는 느낌이 지적인 이해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죠.
Q: 제가 원했던게 바로 이런 경험이었어요.
책에서 읽을 때는 너무 복잡하게 보였거든요.
자아실현 동지회 Self Realization Fellowship의 가르침과는 어떻게 부합이 되는걸까요?
Lester: SRF의 가르침 역시 다른 접근법에서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접근법은 대다수의 구도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헌신 신에게 대한 순복 등의 영역입니다.
SRF의 가르침은 에고를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하는 대신에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세요.” 라고 말하는겁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순복한다면 그것은 에고를 순복시키는 것입니다.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것이 에고를 순복시키는 것이죠.
SRF는 명상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의 무한한 참자아가 뚜렷해지는 것이죠.
SRF의 주된 가르침은 크리야 요가라고 불리우는 방법론인데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통합적인 방편입니다.
당신이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게 된다면 아무런 불일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렛고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 또한 똑같은 것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적이고 지혜를 사용하는 길과 그들의 헌신과 사랑 순복의 측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한쪽을 버리고 다른 쪽만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되죠.
그리고 우리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게 필요합니다.
지금 지구상에 있는 우리는 매우 낮은 단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면서 매일 매일 반대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참자아가 되는 멋지고도 황홀한 경험보다 더 크고 실제적인 도움은 없습니다.
더욱 받아들이세요.
당신의 조그마한 에고를 순복시켜서 참자아의 힘이 당신에게 흘러들도록 해서는 마침내 오로지 참자아의 힘만이 당신을 통해 흐르게 하세요.
그 힘에 모든 영광이 있습니다.
그 힘과 함께 머무세요!
당신의 무한하고 영광스러운 참자아로 머물고 거기에 안주하십시오!
-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October 14.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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