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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속과 영성 - Lester Levenson

awarener 2011. 9. 24. 11:00

세속과 영성

WORLDLINESS AND SPIRITUALITY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차이란게 과연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생활하는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이 둘을 분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점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에고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또는 참자아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죠.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단지 자신의 투사로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정말 자신의 창조물인 것이죠.

또한 밖으로 투사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영화관의 스크린과도 같이 그 위로 전 우주가 투사되어진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의도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영화 - 움직이는 그림 - 가 스스로 창조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그 사람은 그것에 스스로를 굴복시켜 노예가 되는겁니다.

 

 

마스터는 세상의 땅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뒤편에 바로 자신의 참자아가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고 있을 때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이것은 서로 서로를 나누고 분리시키는 것이나 이것이나 저것을 소유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세상의 진실을 그냥 보는 것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스스로 창조해놓은 세상의 건너편에서 혼자 섀도우 복싱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가지의 경우 모두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스터는 바로 세상의 뒤편에 있는 진실을 보고 있고 그것은 조화뿐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온갖 대립되는 것과 분리를 볼 것이고 그만큼 부조화만을 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세상이 자기를 굴리는 것처럼 봅니다.

 

 

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투사물로 보고 자기가 세상을 굴리게 되지 세상이 자기를 굴리지 못합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의 마스터가 되었으므로 항상 여여하게 머물고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완전한 편안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와 같은 평정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그 상태에 있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영성이라고 하는 두가지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 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사물도 우리를 동요하게 할 수 없는 그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당신이 그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최고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에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당신을 눈꼽만큼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탐구하세요.

이것을 연습하세요.

이것을 당신의 삶의 방식으로 삼으세요.

화내거나 질투하고 증오하고 등등..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반응하면서 살지는 마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되든 언제나 한결같은 그곳에 머무세요.

그곳에서 당신은 언제나 똑같이 초연하고 균형잡히고 평화롭습니다.

 

 

Q: 하지만 레스터. 제가 세상을 볼 때면 온갖 서로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Lester: 세상에서 우리가 차이를 볼 때나 혹은 세속과 영성에서 차이를 볼 때면

그것은 아직 우리가 영성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가지지 못해서입니다.

우리는 온갖 것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있어요.

가장 높은 경지는 우리가 세상과 영성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아무런 구별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로 보고 그것을 세상이나 영성으로 나누어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임으로 봅니다. 우리 자신의 참자아로 보는거죠.

혹은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세상 전부를 우리 자신의 안에 있는 것으로 보거나 우리들이 잠들어 꾸고 있는 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들 사이에서도 절대적으로 차이점을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오직 하나의 단일함만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늘 한결같음이 우리의 주된 느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가 얼마나 이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똑같아 보입니까?

정말 변하는 것이 없어 보입니까?

우리가 이러한 관점에서 관찰을 시작하면 약간은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동일함. 하나임. 다름이 아님. 오직 신만이 존재함. 모든 것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신.. 만을 보는 진리의 길을 얼마나 걸어왔습니까?

 

 

당신이 그 비이원론을 성취할 때 당신은 “나 I.” 라고 하는 분리의 감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겉으로 보이는” 타인들을 인식할 때면 당신은 “우리” 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당신은 아마도 스스로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게 마스터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마스터들은 그들 스스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제자들이 그렇게 하듯 3인칭으로 부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모든 사람들이 켄이 농담삼아 저를 부르듯이 부른다면 저는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나” “저” 혹은 “레스터” 라고 말하는 대신에 저는 그(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에 대해서 말할 때 하느님이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단일함이 될 때 느끼는 상태입니다.

당신은 단지 당신의 육체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영성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많은 질문들을 하고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꽤 강조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Q: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나요?

 

 

Lester: 그렇습니다. 당신이 제대로 본다면 그것들은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환상을 통해서 잘못 본다면 분리된 것을 볼 것이고 차이점을 볼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고 저것은 영적인 것이고 이렇게 말이죠.

 

 

Q: 그 "나 Me's" 라고 하는건 에고를 말씀하시는거죠?

 

 

Lester: 네. 그 "나 Me's" 라고 하는건 단지 마스터가 겉으로 보이는 다른 에고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냥 쓰는겁니다.

마스터는 오직 마스터만을 봅니다.

모두가 같아 보이는 무한한 빛의 한 점. 황홀하게 빛을 방사하는 존재들. 오직 하나의 존재의 한 점들.

마스터는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봅니다.

그는 우리가 그를 보듯이 사람들을 보는게 아닙니다.

 

 

Q: 마스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색조로 보는건가요? 아니면 모든 것이 같나요?

 

 

Lester: 찬란하게 뻗어나가는 빛을 방사하면서 모든 곳이 중심이지만 그 가장자리란 어디에도 없는 광대한 빛의 바다에서의 똑같은 빛의 점으로 봅니다.

이게 어떤건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Q: 글쎄요. 저도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그런 빛 같은 것을 본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

 

 

Lester: 네. 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이죠.

마스터들은 오직 우리 안의 마스터만을 보고 있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보듯이 그와는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생활할 수도 있죠.

예를 들자면 “해리. 그래요. 문제가 있군요.” 혹은 “해리. 당신에게는 몸도 있고 집도 있군요.”

하지만 그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그건 마치 꿈속의 목소리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보이는거죠.

그냥 그런척만 하는거에요.

그들이 보는 것은 전지전능함. 결코 변하지 않는 무한한 하나임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냥 그런척하만 하는거죠.

 

 

Q: 마스터들은 이원성의 환상을 보는척 하는거군요. 우리는 실제로는 어쨌든 거기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죠.

 

 

Lester: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도 그런척 하고 있는 거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런척 하고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죠.

마스터는 그런척 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런척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거죠.

 

 

Q: 그런식으로 그는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는거군요?

 

 

Lester: 그렇죠. 오직 우리를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Q: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저는 “나는 야구 게임을 할테야.” 라고 말할 수가 있거든요.

제가 야구 경기를 할 때면 저는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굳이 야구를 해야만 하는건 아니죠.

그러니까 신도 “나는 Bob이 되는 게임을 할테야.” 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그 자신을 자기가 정의한 Bob이라는 인물의 한계에 집어넣는 것이고 마치 제가 야구 경기를 할 때 규칙에 따르도록 하는 것처럼요.

자. 신이 스스로를 즐기기 위해서 Bob이 되거나 혹은 레스터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이 될 때 규칙들에 한계지워지는 것처럼 한계지워진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야구 경기도 하고 재미도 보고 Bob이 되기도 하는거죠.

 

 

Lester: 신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밥. 당신도 항상 기억하고 있나요?

 

 

Q: 그러니까 저는 Bob이라는 놀이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망각한 신이라는건가요?

 

 

Lester: 당신은 진리를 말하는게 아니라 오직 진리를 알 때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로만 하고 립서비스만 하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Q: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Lester: 그러니깐 이론적으로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은 게임을 하고 있는 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당신이 제한된 육체의 존재인척 하고 있는 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거죠.

 

 

Q: 그리고 제가 원하지 않을 때면 언제나 게임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군요.

그리고 제가 이 게임을 창조했기 때문에 이 특정한 한계지워진 존재의 단계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요.

제가 게임의 규칙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야구 경기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계속 게임을 할 필요는 없고

이렇게 손가락을 퉁기듯이 그만둘 수 있는거군요. (딱!)

 

 

Lester: 바로 그겁니다.

좋아요. 이제 당신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정말 모를 때면 당신은 “나 I" 라는 것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서 알아낼 수가 있어요.

우리가 에고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우리는 그 근원이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마음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도 똑같은 것을 볼 수 있어요.

 

 

무한한 존재가 에고와 마음이라고 하는 한계지워진 것을 자신에게 덧씌운 것인양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오직 겉으로 보이는 한계의 게임을 하는 신일뿐입니다.

이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에고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근원과 함께 머문다면 우리는 그것이 진정으로 무한한 참자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Q: 선생님의 책에 따르자면 음.. 아까 Bob이 말한 비유를 쓰자면요.

제가 만약 신을 숭배하고 우러르는 게임을 한다면 전 성취를 할 수 없을겁니다.

만약 신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든 한다면 전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될겁니다.

하지만 제가 밖에 있는 신을 숭배하는 게임을 한다면 전 알지 못하게 될겁니다.

 

 

Lester: 프랭크. 그 말이 옳습니다.

그리스도의 말로 옮겨서 표현하자면 제가 만약 그리스도를 숭배하거나 신앙한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믿었던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방금 프랭크가 말했던 것을 성경이 말하는 식으로 말해본겁니다.

 

 

Q: 선생님의 책에 그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바가바드 기타를 읽으면서 그것을 읽었고 선생님의 책에서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올바른 근원에서 그 말을 가져오신 거군요.

 

 

Lester: 그 책의 서두에 그 지식은 저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제가 그것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그것을 알아보거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할 수 있을뿐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입니다.

진리를 알아보거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말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그것에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알아볼 수만 있을뿐입니다.

 

 

Q: 제가 읽은 모든 책들이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탄잘리가 그렇게 말했고 요가난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가바드 기타와 베다에서도 그렇게 말했고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Lester: 그리고 그들은 수천년 전에 그렇게 말했고 백만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고 십억년 전에도 수십억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은 똑같은 것을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결코 변화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변함없는 것입니다.

 

 

근본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은 것이고 당신은 온 우주를 다 둘러봐도 이것이 참이란 것을 알 수 있을겁니다.

만약 지구에서 수십억 광년이 떨어진 별에서 외계의 존재가 와서는

당신에게 다른 말을 - 즉 당신이 알고 있는 변함없는 진리에 들어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그가 아무리 고귀하게 보이고 말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신과도 같은 행동을 하고 그렇게 보일지라도

당신은 그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비록 천사가 당신에게 와서 무언가를 말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에서 어긋난다면 거절하세요.

왜냐하면 이 우주에는 신처럼 보이는 고귀한 존재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당신이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쉽게 속아버리는 바보가 될 것입니다.

진리란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Q: 우리는 가능한한 빨리 이해하려고 하고 듣고 읽습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에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은 이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이나 성직자들을 보면 그들은 이 길에서 20년동안이나 애쓰고만 있습니다.

제가 저보다 훨씬 오래 이 길에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떻게 하면 빨리 이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Lester: 좋습니다. 이런식으로 봅시다.

만약 당신이 Los Angeles 에서 New York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곧장 가는 길을 모른다고 하면 당신은 길을 탐색을 할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워싱턴주로 가서는 동쪽으로 갔다가 아래로 내려가 네바다주로 갔다가는 올라가서는 몬타나주로 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곧장 가는 길을 안다면 당신은 그 길을 통해서 훨씬 빨리 도착할 것입니다.

길을 탐색하는 것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을 곧장 간다면 3~4일이면 갈수도 있죠.

 

 

Q: 더 이상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답을 알 것 같습니다.

 

 

Lester: 좋아요.

그 목사들과 성직자들은 곧장 바로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길을 탐색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하고 온 미국을 다 뒤진다면 어쨌든 결국에는 뉴욕에 도착할 것입니다.

 

 

Q: 하지만 우리 각자는 서로 능력이 다르지 않은가요?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매우 빨리 쉽게 극복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 문제가 매우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극복하는데 오래 걸리고 매우 애를 써야 하지 않나요?

 

 

Lester: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깨달음을 얻느냐 하는 것은 그 열망의 강도에 달린겁니다.

우리의 열망이 얼마나 강한가요?

우리의 열망이 아주 강하다면 깨달음은 빨리 그리고 쉽게 찾아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가르치는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알아왔던 것들을 그저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앎을 줄 수가 없어요. 아무도 그렇게 못합니다.

저는 그저 제안할 뿐이고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고 무의식적으로는 항상 알고 있었고 앞으로도 알게 될 그 앎에 자신을 여는 것일뿐입니다.

 

 

Q: 다른 말로 하자면 선생님은 그저 참자아에 있는 한 페이지를 읽어주는 것이군요.

 

 

Q: 그렇다면 실제로 이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군요.

 

 

Lester: 네. 그리고 이것 또한 진실입니다.

당신이 충분히 성장을 하지 못했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만약 당신이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이상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깨달음에 대한 강한 열망만이 당신에게 이번 생애 안에 완전한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빨리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과거의 한계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한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아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그가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까요?

 

 

Q: 한번의 깨달음이면 되겠죠.

 

 

Lester: 누군가가 그렇게 하기로 의도한다면 그는 즉각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완전하게 !

그러니 이러한 성장이란 것은 실제로는 우리가 이 영적 성장의 길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지금 현재 하고 있듯이 점점 더 깨달아가다가 어느 날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이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멍청한 게임을 했던거야. 젠장!!”

그리고는 펑!!! 끝나버리는거죠.

 

 

Q: 그리고 그때부터는 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당신은 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당신이 그동안 해왔던 한계라는 게임을 하는 어리석은 꿈을 보게 되는거죠.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몽땅 놓아버리는겁니다.

 

 

-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January 27, 1966.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출처 : 한국트랜서핑센터
글쓴이 : 아인소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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