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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Thou Art That - Lester Levenson

awarener 2011. 9. 24. 11:07

 

 

당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THOU ART THAT

 

 

 

떤 차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한한 존재를 자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나 I”를 자각하고 있죠?

그 “나 I” 라는 단어. 바로 그겁니다.

당신의 존재의 측면 the beingness part of you, 하지만 그것은 오직 존재의 측면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 있음 I AM”을 경험한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그것은 무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항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 순간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나는 I AM 몸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덮어버리고 감추어 버리죠.

그리고 그때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무한한 존재인 나 I는 이 몸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나 I” 라는 단어를 쓸 때면 언제나 당신은 자신의 무한한 존재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항상 “나는 무엇입니다.” 라고 말할 때면 당신은 “무한한 존재인 나 I는 한계지어진 무엇무엇입니다.”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그러한 한계를 원하는만큼 상상할 수 있도록 허용해줍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그토록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에 능통한 이유입니다.

이해가 되나요?

 

 

Q: 네

  

 

Lester: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극한적인 제한 속으로 내몰아서는 우리가 환경의 희생자이고 그것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무한한 존재입니다.

 

 

Q: 왜 우리는 우리의 한계 없는 존재를 깨닫지 않고 있는거죠?

 

 

Lester: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한순간에라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가 그렇게 전지전능합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겁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여러분들은 자신이 무한하고 한계 없는 존재라기보다는 몸이라고 하는 관념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관념을 붙들고 있는한 옴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반대편 측면 즉 무한함을 보지 않습니다.

 

 

Q: 그렇다면 우리 자신과 깨달음 사이에 있는 유일한 것은 단지 하나의 생각일뿐이란 것이군요. 그런가요?

 

 

Lester: 네. 바로 그겁니다.

그 생각이 바로 모든 생각들의 최고점에 달한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여러분이 한계 없는 존재라고 말한 다음에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들여다 본다면

여러분들은 즉시 한계지어진 몸이라는 생각으로 빠져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각자가 바로 지금 무한하고 한계 없다고 말할 때 그 순간에는 여러분을 제가 말한 그런 느낌을 가집니다.

제가 그렇게 말할 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을 알아채셨나요?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한하고 한계 없고 전지전능하며 편재합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말할 때 잠깐은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지만 그 다음 순간 여러분은 자신이 몸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즉시 자신의 주의를 참자기의 모습에게서 돌리고서 그 위에다 몸과 몸에 관련된 개념들로 덮어버립니다.

 

 

좋아요. 여러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는데도 왜 그렇게 하는 것을 멈추지 않나요?

(그 때 2명의 사람이 늦게 와서 방에 들어오면서 여기저기서 대화가 오고갑니다.)

방금 여러분들이 제가 말한 것에 대한 보기를 보여주셨군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셨나요?

만약 제가 말한 것을 계속 유지하고 계셨었다면 여러분들은 새로 온 사람들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분들은 그저 조용히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을 것이고 아무런 대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몸에 너무나도 주의가 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 그것에 끌려가버립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계속 몸으로 있고자 하는 고집 말입니다.

매 순간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이 한계지어진 몸이라고 하는 관념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건가요?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인 무한한 존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건 정말 간단해요. 그런데 무지무지하게 어려워 보이죠.

어려울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해요. 그렇죠?

그건 다 오로지 단지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겁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겁니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듣고 듣고 또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런 말들을 듣는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지금 이 순간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것과 함께 하고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고 단지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되는겁니다.

이건 이렇게 간단한겁니다.

 

 

여기 있는 여자분들 중에 자기가 여자라는 것을 알려고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아무도 없죠.

여기 있는 남자분들 중에 자기가 남자라는 것을 알려고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안하죠?

왜 여러분들은 자기가 남자다 여자다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걸까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그 사실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자신이 무한하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안하죠?

왜 한계의 게임을 하고 고통을 받아들이죠?

왜 그럴까요?

전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여러분들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무한하다는 것을 믿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한계지워진 몸이 되려고 끝없이 애를 쓰면서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거죠?

몸이란 것은 우리를 옭죄는 것이고 고통스럽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고통이죠.

왜 여러분들은 그토록 제한되고 옴짝달싹 못하는 몸이 되려고 하는거죠?

우리의 참모습 - 무한하고 한계 없고 완전히 자유로운 - 에 비교해보면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죠?

어쩌면 누군가가 제 질문에 대답을 해줄 수도 있겠죠.

“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인 무한이 되지 않는겁니까?”

 

 

Q: 무한이 된다는건 어떤 느낌이죠?

  

 

Lester: 그 어떤 방향으로도 절대적으로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한계 없고 완전한 자유입니다.

음식도 산소도 직장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즉시 물질화할 수 있습니다.

이 우주의 어느 곳이든 즉시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만큼 커질 수가 있고 원자의 크기만큼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평화와 만족에 머뭅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환희로운 상태에 머물고 있는거죠.

  

 

Q: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 몸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Lester: 그걸 정말 알려면 당신은 참자아를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않으면 몸이란게 무언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참자아를 알게 될 때만이 그제서야 몸이란게 무언가를 알게 될겁니다.

몸이란건 단지 하나의 생각일뿐입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몸이 된 꿈을 꾸는 상황과 같이 하나의 생각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이렇게 말하죠.

“오~ 이런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었어.”

똑같은 일이 당신이 깨어있는 상태 라고 부르는 이 꿈에서 깨어나면 이 몸에 일어납니다.

  

 

당신은 몸을 보지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겁니다.

당신이 몸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이라도 무한한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당신은 자기 자신이 무한이라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Q: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선생님께서 이 모든 것들에서 떠났을 때 이 몸은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 입니다.

 

 

Lester: 자동적으로요.

하지만 당신은 자기 자신인 “나 I” 로부터 절대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나 I”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당신이 “나 I” 라고 말을 할 때 그게 바로 당신이 있는 곳입니다.

당신은 그것에서 결코 결코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개인성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결코 떠나지도 않습니다.

항상 당신 자신인 “나 I”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자기 자신인 진짜 존재입니다.

  

 

좋아요. 만약 당신이 그 “나 I” 로 있다면 그리고 오직 그 “나 I” 로만 있다면 모든 것은 꿈이라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완전하게 보면 그런 꿈은 결코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건 당신이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지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좋은 비유가 악몽입니다.

당신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끔찍한 것이고 정말 현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이 깨어난 후에야 그것은 현실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렇죠?

똑같은 일이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라고 부르는 이 꿈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서 처음으로 말합니다.

“오~ 이런 모든게 꿈이었네.”

그리고는 또 덧붙여서 말하게 되죠.

“그런 일들은 없었던 것이군.”

 

 

여러분들의 몸에 일어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꿈꾸는 몸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변할 것이지만 여러분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라지는게 아니고 잃는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서 참자아를 보게 되고 모든 존재와 모든 몸과 그리고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를 자기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몸을 잃게 될까봐 혹은 다른 어떤 것이라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은 얻고 얻고 또 얻어서 무한이 되는겁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몸을 잃어버리고 무無가 되어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수백 수천개의 몸이 될 수도 있는데요!

 

 

Q: 우리가 몸을 존재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Lester: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존재>라는 단어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존재>라는 것은 당신 자신인 무한입니다.

당신의 존재는 무한합니다.

당신이 몸이 되는 것은 당신의 <존재>에게는 극도의 제한입니다.

  

 

Q: 우리가 이 몸을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몸에 대한 관념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그 관념을 렛고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몸이다.” 라고 하는 개념을 붙들고 있는한 우리는 “나는 극도의 제한된 이 물리적 몸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간의 불균형으로도 몸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조만간 몸은 죽을 것입니다.

이 몸이라 불리는 것에 뭐가 그리 대단한게 있습니까?

  

 

몸이란건 쓰다가 버리게 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알듯이 언젠가 누구나 이것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맙소사! 어떻게 우리가 이런 제한된 것에 집착을 할 수가 있죠?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극도의 속박으로 묶어버리다니요!!

우리는 새장 안에 있는 새와도 같지만 문은 활짝 열려 있어요.

그런데도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Q: 음. 이 존재의 느낌 그러니까 이 무한한 존재의 느낌은 지금 현재의 몸의 느낌보다 훨씬 더 견고한 것이죠. 그렇지 않나요?

  

 

Lester: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제가 말하는게 이겁니다.

여러분들은 단지 여러분의 존재의 느낌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이 몸이 나 I이다.” 라는 것을 덧붙이지 않아야 해요.

단지 여러분의 존재의 느낌을 붙들고 붙들고 가다보면 여러분은 몸이 나라고 하는 느낌을 렛고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존재를 통찰하게 되고 거기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존재>가 확고해지고 몸은 마치 꿈속의 몸처럼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직 <존재>로만 있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가 모든 존재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무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무한한 부분이 바로 “나 I”입니다.

“나 있음 I AM”과 “나 I”의 <존재-있음 the beingness>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들이 그것을 붙들고 가면 그것이 당신에게 확고한 진실이 되고

몸에 관련된 모든 한계 고통 그리고 문제거리가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Q: 저는 그것을 몇 번 흘낏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계속 붙들고 가는 것은 다른 문제더군요.

  

 

Lester: 당신이 그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가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몸이 나>라는 것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Q: 이 존재의 느낌은 마음으로 알 수 있는게 아니군요. 그렇죠?

The thing is that this beingness cannot be conceived of with the mind, can it?

  

 

Lester: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미 그것이라면 그것을 지각해야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지각해야만 합니까?

단지 그것으로 있으십시오.

  

 

Q: 하지만 이 변형이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려면 먼저 지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Lester: 지적인 이해는 당신이 자신이 아닌 것에서 시선을 돌리고 자기 자신인 것을 보게 하는 방향을 가리켜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나는 무엇인가? What am I?” 라는 질문을 하고 이것은 지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경험이어야 합니다.

  

 

Q: 제가 도달한 곳이 여기입니다.

언제 무한에 대한 이 지적인 이해가 멈추고 진실을 깨달을 수가 있나요?

 

 

Lester: 당신의 생각이 충분히 고요해지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보게 되고 그것이 당신에게 진실이 될 것입니다.

 

 

Q: 우리가 그런 변화의 과정transition을 의식할 수는 없는 것이군요.

 

 

Lester: 당신은 한계의 관념들을 렛고우하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당신 자신인 무한한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변화의 과정transition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이미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항상 그것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것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변화의 과정transition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계지워진 생각들을 렛고우하는 것이 바로 변화의 과정transition입니다.

  

 

Q: 자신의 내면의 존재 inner being를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

 

 

Lester: 당신의 생각 안에서라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오직 경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어요. 

 

 

Q: 그건 진짜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의심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Lester: 네.

머지 않아 당신이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에 질려버렸을 때 그리하면 당신은 이 모든 말도 안되는 것들을 렛고우할 것이고 당신은 자기 자신인 무한이 될겁니다.

지금 이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는데 수백만년의 세월이 걸릴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은 많이 진보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몸을 얼마나 붙들고 있는지 한번 보세요.

 

 

여러분들이 하는 말이나 질문들은 대부분 몸이 어떻게 변할지 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몸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몸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는 한 무한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서

여러분들이 몸과 동일시하는 것을 렛고우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몸이 되려고 고집하는 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몇백만년 동안 머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한계가 없다는 개념을 받아들여본 적이 있습니까?

 

 

Q: 저는 지적으로는 그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Lester: 네. 그래요.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를 몸이라고 믿기 때문에 무한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몸이란 것은 매우 연약한 것이고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몸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이제 어떤 사람이라도 언제라도 결심한다면, 정말로 몸이 아니라고 결심한다면 그는 자신의 무한한 참자아를 볼 수 있도록 자신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몸에 비위를 맞추느라 바쁩니다. 우리는 자신이 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리는 아침에 그것을 깨우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그리고는 이 몸이 유지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른 생명(음식)을 먹어서 이것 안에서 소화를 시킬 수 있도록 돈을 벌기 위해 직장으로 보내죠.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밤에 그것을 파킹해놓습니다. and we park it for the evening.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멋진 생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서 도피해야 합니다.

매일 밤 우리는 무의식이 되죠. 즉 잠을 잡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매일 죽고 태어나면서 계속 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이 몸이 아니고 몸 이상의 것이고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결심하게 되기 전까지 말이죠.

이건 정말 간단합니다.

단지 어려움은 우리가 몸이 되고자 하는 것에 집착을 한다는거죠.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몸이야. 나는 무한이 아니야.”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연약하고 썩어 없어질 몸에 집어넣고서 찾아 헤매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Q: 아까 선생님께서 우리가 너무나도 멋진 생활을 하기 때문에 무의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신가요?

  

 

Lester: 이 삶은 우리가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에 8시간 정도씩 우리는 잠이라는 무의식적인 상태를 통해서 도피해야 하는거죠.

  

 

Q: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전 어디에 있죠? 왜 기억이 안나는거죠?

 

 

Lester: 왜냐하면 당신이 기억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당신이 이 몸과 세상에 연결이 되어있지 않다면 공空이 되어버릴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잠에 빠져서는 세상과 몸을 렛고우해도 당신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렇죠?

우리가 높은 존재의 상태에 올라감에 따라 더 이상 잠을 자지 않는 곳에 도달하게 될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잠을 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아까 말한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 싶군요.

우리가 매일 밤 이것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면 과연 이게 멋진 것일까요?

그러니 그것을 렛고우하고 자기 자신으로 있으세요. 무한으로 있으세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I that I am”임을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주의를 그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I that I am”에 계속 머물게 해서 마침내 그것을 완전히 보고 몸과 그것과 관련된 한계들로 머무는 것을 떨구어 버리세요.

 

 

Q: 우리는 계속해서 이 조그만 제한된 삶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고 상상하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가 계속 여기에 묶여 있는 것이군요. 그렇죠?

 

 

Lester: 네. 왜 우리는 그렇게 하는거죠?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인 무한한 존재를 찾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복 즉 어떠한 슬픔도 없는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참자아 당신의 <존재>입니다.

왜 그저 그것이 되지 않죠?

왜 안 하는겁니까?

  

 

Q: 글쎄요. 제 생각에는 우리가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Lester: 바로 그겁니다. 여러분들은 충분히 원하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온갖 한계들 질병 고통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음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제한된 몸이 되고자 원합니다.

참 이상하죠. 그렇지 않아요?

 

 

만약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면 그것이 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온갖 방향으로 계속 헤매이게 하는 다른 트랙으로 겉돌고 있습니다.

그거에요.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한계 없는 상태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지 않는겁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의 주의는 항상 다른 방향에 있는 셈이죠.

  

 

Q: 그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Lester: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알다시피 당신이 무한이고 또 당신은 그 무한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매일 매일의 모든 행동에서 당신은 자기 자신인 무한한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죠.

당신이 행복이란 것의 근원을 살펴본다면 바깥에 있는 사물과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란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당신이 내면에서 경험하는 무엇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그 행복을 금덩어리를 가지거나 나를 좋아해주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만 않는다면요.

일단 내가 “나의 내면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금덩이를 가져야만 해.” 라고 말한다면

금을 가지지 못하는 한 나는 그 행복을 차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무한한 행복이 우리 자신 안에 있고 저기 세상에는 없는데도 그것이 세상의 자잘한 것들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무한한 행복을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행복이 세상에 있다고 너무나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는 우리 자신인 무한한 존재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인 이 무한한 존재를 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의 주의는 항상 거기에 가 있을겁니다.

 

 

Q: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이 될 수가 있군요!

  

 

Lester: 맞아요. 바로 그 순간 아니면 1-2달 정도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 몸으로 있고자 고집한다면 수백만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Q: 만약 누군가가 모든 것이 꽉 막힌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다면 이런 것으로부터도 가끔은 깨달음이 나올 수가 있죠. 그렇지 않나요? 

 

 

Lester: 오~ 그렇죠.

우리가 하는게 대개 그런 방식이죠.

우리가 대개 한계의 방향으로 갈 때면 우리는 자신을 더욱 더 한계지우게 되고 마침내는 극단적으로 우리가 뭔가 끔찍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죠.

병에 걸린다거나 죽음에 이른다거나요.

그리되면 모든 사람이 결심을 하게 되죠.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는 올바른 방향으로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너무 너무 멋지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Q: 제 생각에는 우리에게는 이 무한한 힘과 접촉을 해서는 그것을 사용해서 이 유한한 삶을 안락하고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뭐 그런데에 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Lester: 그래요.

우리는 우리의 무한한 힘과 접촉을 해서는 그것을 좋은 몸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몸과 세상을 더욱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행복을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몸과 세상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유한하고 부자유한 것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Q: 그렇다고 해서 이 몸을 없애버리는게 도움이 되진 않죠. 그렇지 않은가요?

  

 

Lester: 전 당신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당신이 의식적으로 몸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는요.

만약 당신이 강제로 몸을 떠나고자 한다면 당신은 또 다른 자궁에 다시 태어나서는

당신이 몸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할 때까지 20년을 또 기다려야 할겁니다.

 

 

그러니까 강제로 몸을 떨어뜨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자신을 몸이라고 상상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자기의 몸을 고속도로에 던져 버리고 차들이 그 위로 지나다닌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하면 자기가 얼마나 자신을 몸이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겁니다.

 

 

Q: 우리 자신을 무한으로부터 가로막는 것은 무의식적인 마음 아닌가요?

 

 

Lester: 당신의 생각을 무의식으로 만든 것은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아니라요.

제 말에 반박하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세요.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게 어떻게 당신을 붙들어 매고 있나요?

그게 당신이 아니라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나요?

그것과 당신이 다른 것인가요?

 

 

이 마음이란게 뭡니까?

당신 자신이 마음과 몸 혹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당신이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덫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Q: 저는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창조해낸 것이란 것을 이해합니다만 이젠 그게 너무 커져버렸어요.

 

 

Lester: 그게 아니고 당신이 너무 크게 만들어 버린겁니다.

당신이 다른 것을 탓하는 한 절대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한 당신의 한계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것을 마음이라 하든 몸이라 하든 무엇이라 부르든간에 당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겁니다.

  

 

Q: 저는 그것에 책임을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에 관해서 뭔가를 하기를 원하니까요.

  

 

Lester: 오케이. 당신이 “내가 모든 책임을 질 것입니다.” 라고 하는한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은 마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당신이 아니라 마음에 책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Q: 으흠. 제가 그것에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Lester: 좋습니다. 그 마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의 마음입니다.

  

 

Q: 하지만 여전히 그 마음이란게 다룰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도 같아요.

그게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게 아닐까요?

  

 

Lester: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는겁니다.

당신이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한 당신에겐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말한 것처럼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Q: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참자아를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오해를 하게 되는거군요.

  

 

Lester: 맞아요!!

 

 

Q: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도 마음으로 기능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마치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도구인양 생각하고 있고 우리는 엉터리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군요.

  

 

Lester: 그렇습니다.

  

 

Q: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이 도구를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군요.

 

 

Lester: 그래요.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무한한 당신입니다.

그 도구를 던져 버리세요.

당신 자신이 되는데는 아무런 도구가 필요 없습니다!

 

 

Q: 그게 바로 잘못이군요. 우리가 계속해서 마음을 가지고 뭔가를 해볼려고 하는게요.

왜냐하면 마음이란게 우리에게 익숙한 유일한 것이라서요.

  

 

Lester: 마음이 당신에게 익숙한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인 “나 I”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 I” 라고 하는 단어는 당신 자신이지 당신의 마음이 아닙니다. Just the word "I" and that's you, that's not your mind.

당신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You have the mind.

 

 

당신은 자기 자신인 이 무한한 존재를 항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 I”입니다.

당신은 몸-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이 무한한 “나 I” 에 대한 시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의 몸-마음과의 동일시를 렛고우하고 나면 바로 거기에 그 무한의 존재인 순수한 “나 I” 가 있습니다.

너무 심플하지 않나요? 

 

 

Q: 선생님께서는 그 “나 I” 라는 것이 수십억년의 세월 동안 있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나 I” 라는 것은 항상 똑같은 것인가요?

  

 

Lester: 당신의 참자기인 그 “나 I” 는 항상 똑같고 변함 없고 영원하며 완벽합니다.

  

 

Q: 그것은 항상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군요?

  

 

Lester: 그것은 항상 그대로였습니다. 완벽하고 변함 없고 불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몸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몸을 완벽하게 하고 불멸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Q: 이 몸에도 어떤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Lester: 네. 몸은 고통 받고 한계지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이 몸은 우리가 다시 무한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방향을 되잡아 줍니다.

우리가 몸을 가지게 된 의도는 우리 자신이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마법을 사용해서는 육체라고 하는 극단적인 한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신이 한계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요.

그 몸은 당신이 몸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욱 더욱 고통스러워지다가 마침내 당신은 “이런 제기랄!!”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리고는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아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되고 당신은 즉각 항상 그래왔던 무한의 존재에 깨어나게 됩니다.

 

 

Q: 그 “나 I” 라는 것은 항상 몸을 사용하나요?

  

 

Lester: 아니오. 그 “나 I” 라는 것은 몸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 I”는 변함 없고 완벽합니다.

그 “나 I”가 몸을 사용하는 것을 상상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환상이고 꿈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꿈속에 있는 동안 그것은 현실처럼 보이죠.

이 꿈에서 깨어나세요.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세요.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질문을 몸에 대해서 해대는지 보셨죠?

눈치채셨나요?

  

 

Q: 제 생각에는 좀 더 분명히 하고자 그래서가 아닐까요?

 

 

Lester: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의 무한함을 이 극도의 제한된 것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뒤집으세요.

몸을 렛고우하세요.

여러분들의 모든 주의를 자기 자신인 무한한 “나 I”에 기울이세요.

그럴 때에만 여러분들은 그 무한한 “나 I”를 볼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몸이 자기라고 하는 개념을 렛고우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고통이 위대한 스승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Lester: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고통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몸-마음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는 무감각해져 버렸기 때문이죠.

우리가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제한된 몸으로 있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당신이 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야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기쁨인 당신 자신에 비교한다면 거의 무한한 고통입니다.

전 당신이 몸-마음이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존재하세요.

  

 

Q: 명상을 할 때도 우리가 어느 정도는 마음을 쓰는게 아닌가요?

 

 

Lester: 맞습니다.

하지만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데 사용되어 집니다.

당신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데 마음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죠.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지면 당신 자신이 이 무한한 존재가 스스로 명백해집니다.

이게 명상을 하는 모든 목적입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충분히 고요하게 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인 무한한 존재를 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생각만이 그것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란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명상이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주 고요해져서 자신의 참자아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말이죠.

 

 

Q: 생각을 무한함으로 향하도록 정렬하는 것도 한걸음 나아간 것인가요?

 

 

Lester: 네. 하지만 그것 역시도 또 하나의 생각입니다.

 

 

Q: 그것 또한 하나의 생각이라.. 하지만 어떤 생각들은 다른 생각들보다 좀 더 신을 드러내게 해주지 않나요?

 

 

Lester: 어떠한 생각도 신을 드러나게 해주지 않습니다.

모든 생각은 신 혹은 당신의 참자아를 숨기거나 덮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은 사슬입니다.

좋은 생각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슬입니다.

쇠로 만든 사슬과 마찬가지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슬 역시 당신을 묶어놓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생각을 되돌려야 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십시오.

충분히 고요하게 하면 당신 자신인 무한의 존재가 스스로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생각들이란 그것을 가리는 소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을 반드시 해야만 하겠다면 신을 향한 생각이 다른 방향의 생각보다 훨씬 더 낫긴 합니다.

  

 

Q: 만약 무한함이 마음이 아니라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무한함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죠?

무한이라는 것도 정신적인 관념일뿐인데요.

  

 

Lester: 아닙니다.

어떠한 생각도 무한함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생각은 한계지워진 것입니다.

 

 

Q: 그러면 어떻게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무한하다는 것을 아실 수가 있죠?

그것을 또 어떻게 설명을 하시고 계신거죠?

  

 

Lester: 우리는 무한을 정신적으로 지각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집에 가서 한번 해보세요.

무한함을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Q: 음.. 그건 경험이군요.

  

 

Lester: 그래요. 그건 생각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무한이 되는 경험이죠.

마음을 그것에 관해서 암시할 수는 있지만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설명도 필연적으로 한계지어진 것입니다.  

 

 

Q: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것이고

신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것이고

무한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이 나는 것인가요?

  

 

Lester: 신 무한 참자아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마음은 당신이 그것을 창조해내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렛고우할 때 끝이 납니다.

 

 

Q: 저에게 렛고우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투쟁처럼 보입니다만..

 

 

Lester: 당신이 한편으로는 붙들고 있으면서 렛고우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붙드는 것이 고통입니다.

왜 그냥 존재하고 당신 자신이 되지 않는거죠?

왜 반대편 - 투쟁에 대해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건가요?

왜 그것에 관해서 말씀을 하시나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에 관심이 있고 그것과 무한을 연결해서 제가 무언가를 말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Q: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을 하실 때 선생님은 이 생각을 누가 생각하고 있는지

즉 이것을 누가 컨트롤 하고 있는지를 그냥 알고 계신거군요?

  

 

Lester: 맞습니다.

생각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되면 대답을 찾은 것입니다.

당신이 누가 마음을 가지고 있고 몸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진정한 자기 - 무한의 존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에서 벗어나서 보시고 자기 자신인 <존재>를 향해서 보세요.

그리고 당신 자신이 바로 그것 Thou Art That 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결코 멈추지 마세요!

  

 

-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October 20, 1968.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출처 : 한국트랜서핑센터
글쓴이 : 아인소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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