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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의식을 내려놓음으로써 깨닫기 - Lester Levenson

awarener 2011. 9. 24. 11:04

 

무의식을 내려놓음으로써 깨닫기

REALIZATION BY DROPPING THE UNCONSCIOUS

 

 

 

우리가 말하고 있는 주제는 다른 많은 학파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불립니다.

저는 이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에게 궁극의 행복을 주는 것은 당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을 완전히 알 때 당신은 궁극의 기쁨과 평화로운 만족에 이르게 됩니다.

 

 

당신은 자신이 전부이고 이전에 세상에서 추구하던 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진정한 참자아를 세상에서 찾았던 것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당신의 참자아를 절대 찾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당신은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죠.

당신이 바로 행복이라 불리우는 이것입니다.

당신의 타고난 본성은 무한한 기쁨이고 당신의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토록 멋진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어하고 일단 되돌아가면 영원토록 우리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이 있는 쪽보다는 행복에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면을 봐야만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무한한 존재로서 아무런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지하고 전능하고 지금 여기에서 편재합니다.

이 3가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우리의 의도와 목표를 알아내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무한히 작은 존재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가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극도의 한계 속으로 집어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모습보다 더 한계지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 무한한 우주에서 그리고 삼계三界에서 우리가 있는 곳이 한계의 최극단입니다.

우리는 상상을 사용해서 우리 자신을 얼려버리고 물리적 육체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수백만년의 세월 동안 우리 자신을 몸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이 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자신들의 존재계보다 더 조밀한 곳은 다 볼 수가 있습니다.

가장 미묘한 영역인 코잘계에서는 자신들보다 더 조밀한 영역인 아스트랄계와 물질계를 지각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랄계에 있는 존재들은 보다 더 조밀한 영역인 물질계를 지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보다 더 조밀한 영역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조밀한 영역에 있고 우주에서 가능한 가장 한계지워진 영역입니다.

 

 

이 물질적인 육신은 우리에게 가능한 가장 극단적인 한계입니다.

우리는 답답하게 조이는 느낌을 가지고 상처 받고 손을 내뻗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물질 세계에서 우리의 자유를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고자 하고 더 멀리 더 빨리 가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한계 없는 존재인 우리가 이 육체에 들어온 이후로 한계를 얼마나 많이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극도로 제한된 상태의 존재가 된 것에는 이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갑갑한 느낌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가 조화로운 천국에 있거나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존재계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극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갈 길을 찾도록 내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수많은 길과 방법들을 찾아 애쓰고 있어요.

 

 

그 방법이 무엇이든 그것들은 모두 똑같은 것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한계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죠.

그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들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생각이란 한계의 개념입니다.

생각이 없어질 때 남아 있는 것은 한계 없는 우리의 무한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무의식적인 마음이라고 불리우는 자동적인 생각 과정을 셋업했습니다.

거기에 우리는 생각들을 뒤배경에 밀쳐 놓아 버리고는 그것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저절로 작동하도록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은 물리적인 육체를 작동시키는데 있어서 아주 쓸모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애초에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육체 기관들을 의식적으로 작동시켜야 했었거든요.

모든 세포들 모든 신체 기관들을 말이죠.

이러한 의식적인 주의를 생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의식적인 마음이란 것을 통해서 자동적인 컨트롤을 작동시켰던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생각들을 렛고우할 때면 이 무의식적인 마음이란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 생각들을 쳐다보지 않는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것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생각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생각들은 그냥 계속 계속 굴러만 가고 한 생애 동안 굴러가고 죽고 난 후에도 굴러갑니다.

우리는 생각들과 너무나도 결합이 되어 있어서는 이혼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눈먼채로 계속해서 물리적인 육체들을 떠돌아 다니다가 비참한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하죠.

 

 

우리가 얻어가는 1온스의 즐거움마다 우리는 1파운드의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즐거움이란 우리 자신의 참자아를 세상에 있는 몸을 통해서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려면 첫째 생각들을 고요하게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고

실제로 생각들을 없애야만 합니다.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떠올리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서 그것들이 의식의 수준으로 올라왔을 때 렛고우하십시오.

그 생각들이 올라올 때면 그것들은 한계지워지고 또 대개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렛고우하기를 자연히 원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 생각들을 꽤 많이 렛고우하고 나면 당신은 많은 생각들을 떨굴 수가 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생각들을 한번에 떨굴 수 있으려면 어떤 특정한 것에 관한 경향성이나 기질을 렛고우해야 합니다.

경향성이나 기질들을 렛고우하면 그것을 만들어낸 모든 생각들을 한꺼번에 렛고우할 수 있어요.

이런식으로 당신은 한번에 많은 생각들을 떨구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은 무의식으로부터 한번에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고 더 이상 생각이 없을 때까지 하나씩 렛고우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만약 우리가 그 경향성 그 자체를 떨굴 수 있다면 그 경향성을 만들어낸 모든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한꺼번에 떨구어지고는 단 것을 좋아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겁니다.

 

 

그러다가 당신은 남아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한꺼번에 떨굴 수가 있는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 이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고

당신은 그 힘을 남아 있는 마음을 쓸어버리는데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깨달음은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거죠.

당신이 그 지점에까지 이르러서는 그 힘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남아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한번에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고 나면 당신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고 끝까지 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당신이 좀비처럼 되거나 빛 속으로 올라가 버리거나 사라져 버리는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이 이미 정해놓은대로 몸이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몸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기뻐하면서 몸을 떠날 것입니다.

오래되고 낡아빠진 코트를 벗어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당신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당신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죽었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당신 자신에게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그 몸을 떨구어 버린겁니다. 마치 오래되고 낡아빠진 외투를 벗어버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이미 설정해 놓은 코스를 다 마치기 전까지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당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 죽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궁극의 경지를 성취하는 것은 무無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육체라는 속박을 렛고우하고는 편재함 속으로 움직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을 가로 막는 유일한 것은 당신이 한계지워진 몸이 되고자 하는 욕망뿐입니다.

당신의 그 욕망이 극도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옮겨갈 때 그것이 시작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당신은 몸으로 있고자 하는 욕망보다 완전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열망이 훨씬 더 강렬해야 합니다.

우리들 중에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것을 해내는 이유는 우리들 대부분은 자유로운 무한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식적>인 열망보다

육체로 머물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직면하고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기 전까지는

완전한 자유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욕망을 떠올리기 위해서 무의식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욕망들을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렛고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육체에 속박되어 있는 유일한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이 제한된 육체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식적인 열망이 육체로 있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보다 훨씬 강렬할 때 당신은 즉시 자유를 성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궁극의 행복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상이 우리가 말하는 주제에 관련한 개괄적인 설명인 것 같군요.

이제 질문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질문에 대답을 해드리죠.

 

 

Q: 어떻게 무의식을 파고들 수가 있나요?

 

 

Lester: 좋은 질문이군요.

우선 그렇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시작하기가 참 어렵긴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더욱 더 쉬워집니다.

당신은 실제로 이것이 아주 쉬워지는 지점에 도달할 수가 있어요.

연습을 하면 그렇게 됩니다.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떠올리는 연습을 함으로써 점점 더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영원한 진리>라고 하는 작은 책자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아무도 그 어떤 것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 그런 장소를 선택하라.”

누군가가 당신을 방해하는데 당신이 그 이유를 모른다면 그 생각은 무의식인 것입니다.

그 생각을 떠올려 보세요.

자꾸 계속해서 연습을 해보면 당신은 실제로 생각들을 떠올리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한계지워진 생각을 보게 되고 그 뒤에 있는 에고의 숨어있는 동기를 보게 되면 그것을 렛고우할 수 있습니다.

 

 

Q: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동기를 보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Lester: 단지 쳐다보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떨구어야 하거나 경향성이나 동기들을 알아내야 합니다.

당신이 그 생각들을 보면 그것들이 한계지워지고 부정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렛고우하기를 원하게 될겁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파고들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이란 없습니다.

단지 올바른 방향과 잘못된 방향으로의 움직임만이 있을뿐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더욱 제한된 것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나쁜 것이라 불리우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경험일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욱 빨리 성장합니다.

 

 

Q: 우리가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때요?

 

 

Lester: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 때 무엇이 올라오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온갖 것이 올라올 것이지만 그건 과거의 경험일뿐입니다.

또한 당신이 깨어나면 단 한번도 완벽하고 완전하며 한계 없는 온전한 자신의 참자아와 떨어진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경험들은 마치 꿈속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비친 이미지들일뿐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동안 그것은 당신에게는 진짜처럼 보입니다.

만약 꿈 속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그것은 진짜여서 당신은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당신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그건 그냥 꿈이었어. 내가 상상해낸거라구.”

지금 깨어 있는 이 상태가 바로 밤에 꾸는 꿈과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몸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꾸고 있고 모든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깨어있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무의식적인 생각들의 주요한 부분들을 먼저 떨구어야만 합니다.

 

 

Q: 모든게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 세상은 어떻게 보이나요?

 

 

Lester: 당신이 어제밤에 꿈꾼 것을 지금 보는 것처럼 볼 것입니다.

앞의 그림과 뒤의 그림은 단지 관점의 차이일뿐입니다.

이전에 당신이 한계지워진 몸이라고 생각할 때는 이 몸들과 행위들이 진짜 같았습니다.

깨닫고 난 후에는 당신은 그것을 꿈처럼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볼 것입니다.

당신이 스크린 위의 배우들을 볼 때 당신은 스크린 위의 배우와 동일시해서 자신에 대한 자각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배우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행복하고 불행해 하는 것이죠.

 

 

Q: 선생님께서는 이전에 가졌던 욕망들이 더 이상 없으신건가요?

 

 

Lester: 당신은 자신이 무한하다는 것과 자신이 전부라고 하는 사실에 깨어났기 때문에 아무런 욕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욕망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욕망을 당신을 제한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어. 그러니까 나는 그것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가지려는 욕망을 만들어야 해.”

그러니 욕망이란 한계일뿐입니다.

당신이 그림 전체를 보게 될 때 당신은 자연스럽게 모든 욕망을 잃어버리게 될겁니다.

당신이 모든 것일 때 욕망할 것은 없습니다.

이제 실제로 말해서 당신이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때 당신은 잠시 동안 욕망을 가진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충족된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하는 행동 - 연기일뿐입니다.

 

 

Q: 마음은 어떻게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까요?

 

 

Lester: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빠.” 라고 말을 함으로써 그렇게 하죠.

 

 

Q: 그건 개인적인 것이죠?

 

 

Lester: 물론입니다.

한 나라에서 옳은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접근입니다.

물론 옳고 그름에 일반적인 동의는 있긴 하죠.

일반적으로는 서로 죽이려 하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옳고 그름은 매우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만약 옳고 그름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옳은 것이고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을 그른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Q: 우리가 올바른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을까요?

 

 

Lester: 네. 당신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행함으로써 올바른 것에 대해 배웁니다.(웃음) 그렇죠?

그리고 당연이 올바른 것을 경험함으로써도 배웁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통해서 배우죠.

우리는 불에 손을 뻗어 손을 데여가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삶의 어떤 요소보다도 고통이 우리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렇죠?

다른 방식으로 즉 올바른 길의 멋진 부분이 우리를 끌어당기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이 거기까지 나아간다면 당신의 성장은 매우 빨라질 것이고 당신은 이 길의 끝에 다가서게 됩니다.

 

 

Q: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깨달은 후에는 당신이 미리 셋팅한대로 삶을 살아갈 것” 이란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Lester: 우리는 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도록 이 몸이 할 행동을 미리 셋팅해 놓았습니다.

 

 

Q: 이번 생에 선생님께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건가요?

 

 

Lester: 아닙니다.

과거의 생에 당신은 작용과 반작용, 원인과 결과. 카르마(이것들은 다 같은 것들이죠.)에 종속되어 있었고 그 게임을 계속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이전에 몸으로 있을 때 어떤 것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엔 당신은 비슷한 것들을 설정해놓고선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없애려 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해서 하려고 하는거죠.

 

 

당신은 스스로 미리 설정해놓은 육체가 해야 할 것들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몸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당신이 이미 셋팅한 것들을 정확하게 하게 될겁니다.

이 세상의 생활에서 자유의지란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참자아와 동일시할 것인지 몸과 동일시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몸과 동일시한다면 당신은 곤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유의지란 무엇과 동일시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살아가는 것이 더욱 쉬워지죠.

당신은 맞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게 되는거죠.

 

 

Q: 지복에 대한 욕망이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시작으로 충분할까요?

 

 

Lester: 물론입니다.

 

 

Q: 만약 누군가가 진실하게 추구하고 있다면 구루가 그를 도와줄까요?

 

 

Lester: 깨달은 스승이야말로 모든 도움 중에 가장 큰 도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것 이상으로는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그는 당신이 스스로를 돕는 것 이상으로 도와줄 수가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도우려고 할 때 그는 당신과 함께 할 것이고 당신이 이미 준비가 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Q: 그가 돕는다구요?

 

 

Lester: 그는 당신이 준비가 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스승이 당신의 가슴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당신은 우주의식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도움 중에서 구루의 도움이 가장 큰 것인데 왜냐하면 그는 그 길을 끝까지 가보았기 때문에 당신이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Q: 마야의 환상 구조를 보고 참자아를 보게 되었는데 갑자기 다시 꿈에 사로잡히고 그 꿈을 진짜로 믿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죠?

 

 

Lester: 당신이 참자아를 보았는데도 다시 세상으로 떨어지는 일은 가능합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이 “나는 이 몸이다. 이 세상은 진짜다.” 라고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렛고우하지 않아서입니다.

당신은 무의식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생각들을 의식으로 떠올리고서는 렛고우해야 합니다.

혹은 참자아에 확고히 자리잡아서 당신의 마음이 당신이 창조해 낸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임을 보고 그것들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떠올려서 그것들을 떨구는 것을 계속하세요.

당신은 어떤 경향성들을 없앰으로써 무의식의 생각 덩어리들을 떨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흡연 같은 것을 생각해보죠.

만약 당신이 오랜 세월 담배를 피워왔다면 당신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수천가지의 자잘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경향성들은 강력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강한 의도의 힘을 가지고 당신에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이젠 그만 두겠어.: 그리고는 다시는 담배를 피우겠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죠.

이게 바로 경향성을 없앰으로써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는 욕망에 관련된 모든 생각들을 한번에 없애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덩어리를 없애는 것이죠.

 

 

Q: 그 한덩어리를 없애면 모든게 깨끗해지는거군요?

 

 

Lester: 완전히요.

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이런식으로 담배를 끊은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 결심을 하고 그걸로 끝이었어요.

 

 

Q: 그럼 이런식으로 우리를 성가시게 구는 것들을 없앨 수가 있겠군요?

 

 

Lester: 네. 만약 당신에게 질투심이 있다면 그걸 들여보세요.

만약 당신이 질투심을 느끼는데에 신물이 난다면 이렇게 말할겁니다.

“이젠 끝이야. 이만하면 됐어. 다 가버렸다구!”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마음을 큰 덩어리로 렛고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무의식속에 있는 질투심에 관련된 수많은 생각들을 렛고우하게 되는거죠.

이런식으로 경향성들을 렛고우하려면 어느 정도 성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Q: 우리가 만약 진짜로 그렇게 했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거군요?

 

 

Lester: 그렇죠.

만약 당신이 결심을 하고 진짜로 렛고우하면 그건 사라져 버립니다.

우선은 소소한 것들부터 시도해보세요.

그리고는 좀 더 큰 것들에 성공하게 될겁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를 하고 그리하면 2가지 나아가서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세요.

이것은 매일 매일 해보시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이것을 생활의 습관으로 만들어 보세요.

매일 매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들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모든 경험은 전부 다 한계지워진 경험입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짜증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뛰어난 기회입니다.

그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떠올리고는 떨구어 버리는 습관을 기르세요.

매일 매일 연습하면 빨리 도달할 수가 있을겁니다.

 

 

-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July 22, 1970.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출처 : 한국트랜서핑센터
글쓴이 : 아인소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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