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기로 우리 그룹에도 의사들이 몇몇 있죠.
이미 의학 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의사가 인생의 보다 더 깊은 의미를 추구하고
육신의 삶의 뒤에 있는 근본적인 원인들을 더 알게 된다면 더욱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죠.
하지만 일단 의사 개인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전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런.. 당신은 진절머리 나는 분야에 있으시군요! you're in a sick business!”
그리고 당신이 겉으로 보는 이 질병들을 당신의 마음 안에서 모두 되돌리지 않는다면 이 질병은 당신의 건강에 좋지 않을겁니다.
Q: 오늘 밤 제가 선생님께 질문할게 있습니다. 도대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아시는겁니까?
Lester: 제가 그걸 의식적으로 하는건 아닙니다.
제가 모든 것을 렛고우하고 신께서 모든 것을 하시게 하면 When I let go and let God
제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의문거리에 저절로 대답이 주어집니다.
Q: 저는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하신걸 강하게 느끼는데요. 어떻게 이것을 되돌릴 수 있죠?
Lester: 아다시피 마음은 오로지 창조만을 하고 그것도 우리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그림들을 만들어냅니다.
뭔가 아픈 것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질병을 창조해내기가 쉬워요.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정신적으로 보고 있는 것을 되돌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Q: “되돌린다”는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예를 들어서 오늘 저에게 온 환자가 있었거든요.
저는 모든 상황을 되돌리려고 했어요.
불완전함을 조금도 보지 않고 오직 신의 완전함만을 보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오늘 제가 그 환자를 봤을 때 그에게서 도대체 완벽함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더라구요.
Lester: 당신에게는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주 쉬워요.
왜냐하면 전 그것을 지난 16년간 계속해 왔거든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하곤 해요.
“오.. 이건 안 좋아. 이건 너무 아픈 일이야. 그리고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구.. ”
하지만 전 그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에게 무언가 불완전함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저는 그들이 저에게 그 환상을 믿도록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죠.
하지만 제가 그들을 볼 때 저는 그들이 진실로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는 즉시 겉으로 보이는 불완전함을 완벽함을 봄으로써 되돌리죠.
진실로 우리의 존재는 절대적인 완벽함입니다.
당신이 완벽함에 대해서 더 많이 탐구하면 할수록 당신은 그것을 더욱 깨닫고 알게 될겁니다.
당신이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은 단지 겉모습만 말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될수록 당신은 그것에 더욱 대처를 잘 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당신이 이 세상의 배후에 있는 진실에 대한 앎을 필요로 합니다.
진실은 존재 그 자체이며 이것이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Q: 글쎄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너무나 많이 들어왔지만 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Lester: 그건 당신이 너무나도 겉모습을 진짜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절대적인 완벽함을 보는 것을 지극히 어렵게 만드는거죠.
제가 하는 말들이 당신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진정한 당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Q: 그렇죠.
Lester: 뱀과 로프의 비유를 다시 들어봅시다. 들어보셨죠?
어둑어둑할 무렵에 길거리에 있는 로프를 보았는데 그것을 뱀이라고 착각한거죠.
우리가 그것을 뱀이라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 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것을 뱀이라고 생각하는한 우리는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죠.
사실은 그것은 로프일뿐이었어요.
뱀이란 것은 환상이었을뿐이고 그게 바로 세상에 비유할 수 있는거죠.
이 세상은 뱀입니다.
실제는(로프는) 바로 세상 뒤에 있고 또 세상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환상만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한 우리는 실재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I Am That I Am.” 이라는 이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용히 침잠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세상의 근원인 무한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란 이 무한한 존재가 스스로 명확해지도록 마음을 충분히 고요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자신이 바로 그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할 때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참자아를 볼 때 당신은 자신의 존재인 완벽함이 전지전능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완벽함이 바로 뱀으로 착각한 로프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길에서 계속 고수해야 할 것은 명상하고 내면의 신성함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진실을 보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탐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진실을 보게 되면 당신은 이 세상의 완벽함과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수많은 몸들이 있고 그것들이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이 진실을 보게 되면 당신이 어디를 보더라도 오직 절대적인 하나임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를 보더라도 오직 당신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이 오직 당신의 마음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당신은 그것이 바로 당신의 우주라는걸 알게 됩니다.
당신은 밤에 꿈속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창조했습니다.
그러니 요약해서 말하자면 선생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 때문에 아주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것이 세상을 완벽한 것으로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건 아닙니다.
만약 선생이 진실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충분히 강하다면 그걸 볼 수 있습니다.
Q: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완벽함을 볼 때 소위 말하는 “아픈 환자”가 오더라도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전혀 보지 않으시고 오로지 완벽함만을 보신다는거죠?
Lester: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 환자가 완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은 그의 마음속에서 병이라는 환상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죠.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저에게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면 전 그 아픔을 보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아프다고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그들이 저에게 말을 할 때 전 마음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완벽해요.”
당신도 이렇게 할 수 있어요.
Q: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완벽함은 영혼의 완벽함인거죠?
Lester: 전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완벽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겁니다.
아픈 몸이라는 것은 환상입니다.
그 사람은 실재이죠.
Q: 선생님 말씀은 아픈..
Lester: 아픈 몸이란건 환상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겁니다.
우리가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것을 생각을 해보죠.
우리는 신기루에서 물을 봅니다.
우리가 그것을 확인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항상 물처럼 보일겁니다.
만약 우리가 그 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그것이 단지 모래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후로는 우리는 그 물이 단지 신기루일뿐이라는걸 알게 되는거죠.
그 다음번에 우리가 신기루를 볼 때 우리는 여전히 물을 볼 것이지만 이젠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그 물이 환상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몸과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우리는 환상을 진짜인 것처럼 볼 것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 당신의 존재를 발견하세요.
오직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세상과 육신의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Q: 환자를 대할 때 제가 완벽함을 본다면 그건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Lester: 우리가 다른 사람의 완벽함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이로 하여금 자신의 완벽함을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믿음에 의한 치유 혹은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날 때 그것은 환자가 자신의 완벽함을 보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난겁니다.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이미지가 없이는 몸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마음 속에 없는 것을 육신이 붙들고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몸이란 것은 탄수화물 미네랄 등등으로 이루어진 것일뿐입니다.
단지 물질에 지나지 않아요.
몸에는 지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지성 intelligence입니다.
우리가 몸을 가진 생활을 상상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아프다는 그림을 붙들고 있지 않는 한 - 물론 무의식적으로 - 몸이 아픈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의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즉시 바로잡았을 겁니다.
그것이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까요.
영적인 치유를 본적이 있습니까?
소위 말하는 “기적”이란 것을 본적이 있나요?
Q: 네.
Lester: 그렇다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겠군요.
이것은 단순히 몸을 작동시키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변화를 줌으로써 일어납니다. 그게 다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자마자 몸은 변화합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아프다는 심상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어렵죠.
Q: 우선 우리가 어떻게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완벽함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우리가 바라는 것을 더욱 완벽하게 심상화하는데 도움이 될만한게 있을까요?
Lester: 우리의 잠재의식을 의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직한 내면의 성찰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내면으로 더욱 주의를 돌리면 돌릴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잠재의식적인 생각들을 더욱 많이 의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잠재의식적인 생각이라도 그것을 일단 의식을 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것은 의식의 차원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욱 능숙해집니다.
우리는 완벽이 있는 곳을 바라봄으로써 완벽함에 대해 알게 됩니다.
완벽함은 우리가 있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나 I>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내면으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해야만 해요.
“나는 누구인가?”
대답이 올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대답이 오면 당신은 알게 되고 그리고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이 고요해져야 합니다.
생각들은 진실을 가리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합니다.
생각들은 한계지워진 개념들이고 수많은 생각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퍼부어집니다.
Q: 네. 네. 그래요. 제가 좀 조용히 앉아 있어 보려 하면 이런 경험들을 많이 했죠.
어떻게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수가 있죠?
Lester: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강렬하고도 꾸준한 열망을 통해서입니다.
당신이 자기를 알고자 하는 관심이 세상과 몸에 대한 관심보다 더욱 강해질 때
세상과 몸에 대한 생각들은 고요해지고 당신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이란 당신이 셋팅한 도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거죠.
강렬하고도 꾸준한 열망이 열쇠입니다.
Q: 제가 이것을 질문한 이유는 저의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것도
나 자신의 밖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라는 것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제가 이것들을 창조했단 것이죠.
뭔가가 잘못되었다면 제가 그 원인입니다.
전 제 인생에 책임을 집니다.
저는 매순간 순간 나의 삶을 창조하고 있어요.
이제 저는 이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전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전 온전히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뭔가 막혀 있는 느낌입니다.
여기까지는 다 이해가 됩니다만 이젠 이것을 넘어서 가고 싶습니다.
전 이 장벽을 부수고 싶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Lester: 네. 당신은 더욱 나아가고 싶은거죠.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은 성장에 있어서 뛰어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마스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자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Q: 오!! 네. 네. 맞아요. 완전 동의합니다.
Lester: 좋아요. 우선 당신은 물질의 마스터가 됩니다. 그리고 몸이란 물질의 일부분이죠.
그리고는 당신은 마음의 마스터가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부분이 이것이죠?
Q: 네.
Lester: 우리가 마음을 마스터했을 때 우리는 완전한 마스터가 됩니다.
그러니 당신은 거기에 이를때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이것을 타파스 혹은 고행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을 마스터한다는 것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죠.
아주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이죠.
아주 온도가 높고 습도도 높은 곳으로 가서는 편안하게 느끼는겁니다.
몸에 고통이 있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연습이죠.
Q: 그것은 의식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입니까?
Lester: 아뇨. 당신이 이것을 할 수 있다면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당신이 자신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만약 몸에 고통이 있더라도 당신은 몸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당신을 방해하진 않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이 아프지만 당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데
왜냐하면 당신이 다른 사람의 몸과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의 몸과 동일시한다면 당신은 그 몸의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Q: 네. 이해가 됩니다.
저는 이제 제 몸이 아프지만 “몸이 아프군” 하고 말할지라도 제 마음은 기분 좋게 느낄 수도 있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아주 끔찍하게 일이 꼬여서는 몇가지 잘못된 처리를 했고 엉망진창을 경험해야만 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저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뭐랄까 항상 O.K. 인 상태가 있었어요.
Lester: 언제나 O.K. 맞아요. 좋군요.
항상 모든 일의 뒤에는 행복 well-beingness 이 있죠.
Q: 맞아요. 이제 어떻게 하면 제가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Lester: 지금까지 했던 일을 계속함으로써 당신은 점점 더 발전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것이 영원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마음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달하게 될 것이고 마스터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마음이라고 생각하나요?
Q: 제가 마음이냐구요?
제 대답은 부분적으로는 지적이고 부분적으로는 감정적이지만 No입니다.
나는 마음이 아니라 그것 뒤에 있는 생명입니다.
Lester: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올바른 태도입니다.
마음이란 단지 생각들의 조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생각들을 생각합니까?
당신이 그렇게 합니다.
당신이 생각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던 일을 계속하십시오. 계속해서 마음을 마스터하는 작업을 하십시오.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당신은 자신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더 많이 볼수록 당신은 진정한 자신을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멋진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을 지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마스터하는 작업을 하십시오.
설사 몸이 고통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나는 몸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면 그 고통이 덜어질 것입니다.
이때 당신은 실제로 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의식의 중심을 몸에서부터 옮기고 있는 것이죠.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의식의 중심을 육체 안에다 두고 있고 거기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 밖에서 몸을 작동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 몸을 보듯이 육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을 보는 것처럼요.
이러한 연습은 몸과 마음은 당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고 당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완벽한 앎을 당신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것을 충분히 확실하게 알게 된다면 당신은 마음을 집어던져 버릴겁니다.
이제는 마음의 바로 뒤편에 있는 전지전능함의 영역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죠.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알려지고 완벽하게 튜닝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 될 것인데 왜냐하면 완벽한 전지전능함에서 나온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마음이란 것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마음은 전지전능함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만을 취해서는
그것마저도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이 대답이 되었나요?
Q: 네. 대답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것은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서 함께 오는
영적 체험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는 동안 저는 유체이탈이나 오라를 볼 수 있는 능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제가 의심 많은 도마가 된거죠.
제 안의 어떤 부분은 어떠한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성장이 있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여전히 이러한 영적인 체험 중에 하나라도 그저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Lester: 이러한 영적인 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접근입니다.
이런 영적인 힘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러한 힘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힘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힘을 얻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오용하게 될겁니다.
당신은 그런 힘들을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당신과 당신의 성장 그리고 영적인 힘을 해치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그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적인 힘을 개발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러한 영적인 힘들이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오픈될 때까지 그저 당신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것들을 사용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고 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가 전지전능하고 모든 영적인 힘들이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들은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힘들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노력을 해야만 하니까요. 그렇죠?
Q: 그렇습니다.
Lester: 모든 힘들이 존재하는 상태는 아무런 노력이 없는 상태 effortless state입니다.
하지만 에고의 개념은 한계의 개념이기 때문에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전지하고 전능함에 있어서는 전혀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능한 자신을 깨우친다면 노력이 필요하지 않죠.
이것은 또한 렛고와 신께서 모든 일을 하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만 에고를 렛고우하면 우리는 어떠한 기적도 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렛고우하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아무런 노력이나 수고 없이 즉각 이룰 수가 있죠.
이해가 되나요?
Q: 네.
Lester: 그러니까 영적인 힘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가 애써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힘들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외부의 환상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힘들이란 단순히 외적인 물질 세계에서 지름길과도 같은거에요.
우리가 단지 시간을 없애버려서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세상에는 기적처럼 보이는 것이죠.
Q: 선생님께서 완벽한 몸을 심상화한다고 말씀하실 때는 어떻게 하시는건가요?
Lester: 글쎄요. 전 한번도 완벽한 몸을 심상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덫과 감옥을 심상하는 것입니다.
이 물질적인 몸보다 더 제한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렇게도 당신 자신을 몸이라고 상상하고 싶으시다면
모든 고통 왜곡 불균형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하고 이상적인 육체로 말이죠.
당신은 그걸 상상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너무나도 몸의 불완전함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어요.
Q: 어제 환자가 한명 왔는데 여호와의 증인이라서 수혈을 거부했어요.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외과 수술을 했는데 너무 복잡한 수술이라 평상시의 3배 정도 시간이 걸렸고
그 환자는 거의 혈액의 절반을 잃어서 거의 목숨을 잃을뻔 했어요.
Lester: 그게 당신의 책임이었나요?
Q: 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 어차피 자기 문제니까. 죽어도 좋다면 그럼 죽든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었죠.
제가 저의 소망을 사용함으로써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건가요?
제가 한 말은 “신이시여. 당신이 그를 돌봅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당신의 보조자입니다.”
이렇게 했어요.
Lester: 그렇게 했다면 효과가 있었던거군요. 그렇죠?
Q: 네. 분명히 효과가 있었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한다면 저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게 되는건가요?
Lester: 당신이 렛고우를 하고 신께서 하도록 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Q: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저의 소망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Lester: 당신이 렛고우를 하고 신께서 하도록 한다면 당신은 강요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이지 위대한 의사가 될 것입니다.
Q: 감사합니다. 제가 만약 선생님의 말씀처럼 하면 어떻게 될까요?
Lester: 당신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신께서 보살피도록 했다면 그 남자는 혈액이 모두 없어졌다 해도 살아났을 겁니다.
신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Q: 그게 바로 제가 한겁니다.
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그 환자를 위해서 뭐라 해야할지를 몰랐거든요.
Lester: 당신은 정확하게 한 것입니다.
당신의 기도는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든 그렇게 될 것입니다.”였어요.
기도는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꼭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어요.
Q: 제가 한 말이 그것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한지는 잘 몰랐어요.
Lester: 충분합니다.
당신이 말로 하든 하지 않든 기도는 거기에 있어요. 그는 지금 살아있죠. 그렇죠?
Q: 네
Lester: 누군가가 자신이 죽고자 결정하면 누구도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떠나고자 이미 결심한 사람을 붙들어 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와는 반대로 육체적으로 볼 때는 살 가망이 거의 없는데 다시 살아난 사람들을 많이 봤을겁니다.
보세요. 바로 그 몸을 작동시키는 그 사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을 도와주고 가이드해줄 수 있을뿐이죠.
Q: 육신을 떠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바람이 있는건가요?
Lester: 그렇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이미 우리가 언제 떠날지를 미리 셋팅해 놓았습니다.
Q: 오! 우리가 벌써 셋팅을 해놓았다구요?
그럼 우리가 그 셋팅을 바꿀 수도 있는건가요?
Lester: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초월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초월할 때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당신이 고른 방식으로 육체를 떠날 것입니다.
당신은 육체의 카르마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셋팅한 법칙이고 계속해서 진행되어 갑니다.
카르마를 해결하려 드는 동안 우리는 카르마를 계속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것 너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넘어섰을 때 만약 우리가 몸을 가지고자 한다면 우리는 수백개의 몸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넘어선다면 이 조그만 물리적 육신에 스스로를 가둘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제한이 바로 우리가 신체라 부르는 이 상태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넘어섰을 때 더 이상은 몸이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교훈을 배웠습니다.
만약 당신이 몸을 원한다면 당신은 아스트랄체를 이용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만약 손상을 입는다면 즉시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물리적 육체를 넘어가게 되면 만약 육신을 유지해야 할 어떤 이유가 없다면 당신은 육체를 유지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당신은 이미 셋팅한 코스를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넘어서 육체가 당신에게는 꼭두각시 인형과 같은 것이 되는 곳으로 갈 수는 있습니다.
물질계에서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으로 매여있고 이것은 보상의 법칙인 카르마로 불리웁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될 때 삶은 아주 쉬워지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맞서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직업에서도 이것이 도움이 될겁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이미 결정한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삶에서 어떠한 것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에 대한 태도만 바꿀 수 있을뿐이죠.
하지만 선택의 자유는 있습니다.
이 육신과 동일시할 것인가 혹은 우리의 참자아와 동일시할 것인가?는 선택의 자유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참자아와 동일시할 때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당신이 자신의 몸과 동일시할 때 필연적으로 자신을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에 종속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1온스의 즐거움을 위해서 몇 파운드의 고통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고통에 푹 잠겨 있어서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젠 너무나도 고통에 내성이 생겨서 아주 많은 고통도 참아낼 정도에 이르렀어요.
여러분들도 경험을 해봐서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 자신인 무한한 존재와 동일시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육체의 상태를 환상으로 보도록 노력해 보세요.
당신이 그렇게 볼 수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게임으로 볼 것이고 당신은 그것이 게임이라는 것을 알면서 게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제가 말하는 것을 제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에게 해로울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남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것이죠.
당신 스스로 이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증명을 해야 해요.
그리하면 이것은 앎이 되고 유용한 것이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저 이 앎을 얻을 수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Q: 오늘 밤에 말씀하신 것들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선생님께서는 깨달음이 아니고 무엇으로 스스로를 치유하셨나요?
Lester: 만약 어떤 이가 영적으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가 있고 이것은 즉각적입니다.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치료를 해야만 합니다. 이것 또한 매우 빠릅니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육체적으로 치료를 해야만 합니다.
의사에게 가야죠.
우리에게 적절한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전 사람들에게 의사에게 가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계이기 때문이죠.
의사들은 필요합니다.
의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이렇게 방대한 의학 분야가 있을 리가 없죠.
Q: 저는 독신 생활이 깨달음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읽었습니다만 사실인가요?
Lester: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한한 존재를 어느 정도 경험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자아는 무한한 기쁨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기쁨을 직접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갖고자 하는 것은 그것뿐일겁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전체가 아니고 완전하지도 않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상상을 함으로써 외부의 수단을 통해 그것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밖에 어딘가에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망 부족함을 만들어 냈는데 우리가 그것을 성취하면 그 소망에 대한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고
생각들이 떨어져 나갈 때 우리는 참자아에 더 가까이 있게 되는겁니다.
그리고는 이것을 소위 행복이니 기쁨이니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을 때면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를 속여서 기쁨이 밖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에 대한 욕구를 만들어내어서 욕구를 충족시키고 약간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지만
이것은 단지 욕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일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외부에 있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 갇혀있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그것을 구하려는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우리의 참자아가 조금이라도 더 드러나도록
충분히 정신적인 고요가 임하게 되면 그것을 일러 행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밖으로 기쁨을 찾아다니는 짓들을 멈춰야만 합니다.
섹스뿐 아니라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밖에 있는 모든 것들 말입니다.
이게 첫 번째 요점입니다.
두 번째는 포기한다고 말해놓고서는 더 강하게 원하는 것은 그것을 쫓아다니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방해가 됩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이 욕망들을 렛고우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그것과 맞서 싸우려 들기 보다 중용을 지키면서 진리를 계속 탐구하세요.
언젠가는 우리가 섹스를 할 때 가지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섹스가 줄 수 있는 어떠한 기쁨보다 더 높은 상태에 항상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을 렛고우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섹스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당신은 기쁨을 얻는 대신에 오히려 기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섹스라는 행위로 그것을 제한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중용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가능한한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당신은 모든 것들을 렛고우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섹스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그 기쁨을 늘 즐기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섹스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란 단지 생각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참자아를 더 많이 자각하게 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섹스에 대해서 억압된 생각과 욕망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섹스로 자신을 충족시킬 때면 우리는 많은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Q: 선생님 말씀은 우리가 지난 생애에서 이번 생으로 생각들을 가져왔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모조리 고요하게 해야 하구요.. 이런 세상에나!!
Lester: 결국에는 당신도 마음의 나머지 부분들을 모두 내려 놓는 지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독신 생활이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그리고 또한 다른 모든 욕망들을 내려 놓지 않고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성장해감에 따라 그 과정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결국 섹스를 렛고우하는 것이 아주 쉬워지는 지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섹스에 너무나 매여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렛고우하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도 자신이 렛고우를 할 수 있는 지점에까지 의식이 상승되어져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섹스에 반대하는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몸을 만들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우리는 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하기로 결정을 했죠.
그리고는 그것에 사로잡혀 버렸고 엉망이 되어버렸죠.
우리는 현재 다시 상승하는 길에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도 같은 생식 방법을 렛고우하고는 2명의 육체를 가진 존재가 1명의 아스트랄 존재와 함께 해서 제 3의 몸을 만들어 가족이 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여기 이 지상에서 그런 상태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섹스에 대한 욕망은 정말이지 우리들을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밑바닥으로 내모는 것이고
무의식적으로 전 인류가 그것을 알고 있고 섹스를 사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것을 사악한 것으로 부르면서 섹스를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식으로 세상에 나오고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전체적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을 왜곡시켜버렸습니다.
만약 섹스를 하는 것이 사악한 것이라면 음식을 먹는 것도 사악한 것이죠.
사악한 것은 부족함을 만들어내고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창조해서는 우리 자신을 이 환상에 허우적대도록 만든 그것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욕망없음의 상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욕망도 필요도 없으면 당신은 가장 행복한 상태에 있습니다.
Q: 제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자. 이제 뭘한담? 영화를 보러갈까? 아냐.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아.
친구 집에 들러볼까? 아냐. 그것도 별루야.”
전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시간을 보내려면 뭔가를 해야만 하는데 그냥 앉아있어야 할까요?
Lester: 네. 그리고는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해보세요.
당신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될수록 당신은 더욱 행복해져서는
당신의 그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없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어떤 것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Q: 그러면 우리가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는 것인가요?
우리가 한번의 생애 동안에 해낼 수가 있나요?
Lester: 누구라도 한번의 생애 동안 해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대단한 이점인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계만큼 어렵고 힘든 곳은 이 우주에 극히 작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너무나도 힘들고 거친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욕망도 가장 강한 곳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번 생애에 우리가 왔던 고향인 무한으로 되돌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This Session was recorded in Los Angeles. May 22 1968.
from KEYS TO THE ULTIMATE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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